[오션 뷰] 에너지 안보 해법, ‘바다’에 있다
이연승 홍익대 조선공학과 교수
세계 각국, 신재생 에너지 확보 사활
해상 풍력 등 바다서 새로운 가능성
대전환의 시기, 우리도 적극 나서야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같은 해 4월 독일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담은 법안을 발표했다.
AP 등 외신들은 독일 에너지·물 산업협회(BDEW)가 지난해 1~2월 독일 전력 소비의 54%를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대체했다고 발표한 내용을 보도했다. ‘엠버 국제전력리뷰 2022’에 따르면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52.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 최대의 화석에너지 생산국으로 꼽히지만, 2021년 10월까지 전체 발전량의 23%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석탄, 석유, 가스 등 에너지의 92%를 수입(2021년 기준 총수입액의 22.3%, 1372억 달러)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재생 에너지 공급 비중이 7.5%에 불과하다. 앞으로 7년이 남은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보급 목표인 21.6%를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매우 크다.
세계가 ‘넷제로(Net Zero, 탄소 순 배출량 0)를 향한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긴 하나, 세계 인구 증가와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화석 연료의 생산은 더 많아지고 있다. 심해 석유 생산량의 경우 1990년 30만 배럴에서 2022년 1040만 배럴, 2020년대 말까지는 1700만 배럴까지 늘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약 30년 전만 해도 해저 100m 정도에서 원유를 채굴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수심 1000m 이상 초심해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나마 셰일 가스의 개발로 에너지 공급이 증가했고, 유럽의 재생에너지 보급 증가로 현재 에너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패권 다툼으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중동 지역의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화석에너지 수입이 막힐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많다.
세계 해양 전문가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Global Maritime Issues Monitor 2022’는 앞으로 해양산업의 가장 큰 이슈로 ‘해운의 탈탄소’와 이를 위한 ‘새로운 환경 규제’를 전망하고 있다. 더불어 앞으로 10년 후에는 ‘에너지 가격’과 ‘정치적 긴장’이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에너지가 세계 경제와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는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다.
유럽은 탄소 중립을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의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탄소 배출 등급에 따라 선박의 등급을 정하고,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운항을 할 수 없는 조치까지 시행된다.
이러한 규제는 조선, 해운 등과 같은 해양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친환경 선박 개발을 통해 연료 소비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경제효율 선박을 설계하는 것 외에도 선박에서 배출되는 선박 온실가스(Green House Gas)를 처리하기 위한 장치도 탑재하고 있다. 현재는 저탄소 연료를 활용한 다양한 선박 엔진 개발과 무탄소 선박 엔진에 이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 추진 선박에 이르기까지 선박으로 인한 대기오염 물질과 탄소 저감을 위한 투자와 기술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해양과 에너지 생산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위한 가용토지가 부족하다는 점인데, 해결책으로 바다가 떠오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해양이 가장 유력하다. 해상풍력을 위해 북해와 발트해 국가 간 영역 확보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해양 신재생 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에너지는 우리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로 공급이 가능하다. 보건·안전·환경적인 관점과 경제적 측면에서 에너지의 생산과 보관을 비롯한 발전과 설비, 도시 등 육지의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해상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도 해양 신재생 에너지의 다양한 장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해양의 탈탄소 정책을 향한 기술과 환경, 경제적인 측면의 변화는 대규모 투자와 축적된 기술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에너지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도전과 지혜 그리고 협치가 필요하다.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