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고갈비 냄새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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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 주려 하셨나 보다/ 세월이 흘러 고등어만 보면 울 엄니 생각이 나는구나!”

김창완의 어머니는 ‘어머니와 고등어’란 노래를 듣고 무척 서운해했다고 전해진다. ‘아들에게 싼 고등어나 먹이는 엄마’로 비칠까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생선인 고등어는 어려운 시절, 저렴한 가격에 식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맛은 물론이고 DHA와 오메가3지방산 등 영양이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해 ‘바다의 보리’로 불렸다.

부산은 전국 고등어 생산량의 80%가량이 위판될 정도로 고등어의 고향이다. 한때는 부산공동어시장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싸고 흔하다 보니, ‘고갈비(고등어 갈비)’라는 말도 부산에서 만들어졌다. 부산의 소울푸드 고갈비는 고등어 배를 가르고 칼집을 내서 등뼈가 보이도록 펼쳐 연탄불로 석쇠에서 노릇노릇 구워 낸 것을 뜻한다. 살점을 젓가락으로 먹다가, 마지막에는 등뼈를 손으로 잡고 갈비처럼 뜯어 먹어서 고갈비라 부르게 됐다. 60년대 대학생들이 ‘언감생심 비싼 돼지갈비 먹는 흉내나 내자’는 기분으로 고등어 등뼈를 뜯으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전언이다.

1960~1980년대 전성기에는 부산 용두산공원 자락에서 광복로로 연결되는 골목에 고갈비를 구워 파는 가게들이 모이면서 ‘고갈비 골목’이 생겼다. 그 시절 용두산공원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겨울 저녁 어둠이 깔릴 때, 가게마다 풍겨 나오는 고등어 굽는 냄새에 끌려 나눴던 대화와 고소한 맛, 함께했던 친구나 연인에 대한 아스라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고갈비 골목이 지금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50년가량 골목을 지키던 가게는 대부분 떠났고, 이젠 한 곳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한다.

다양한 먹거리에 젊은이들의 입맛이 변한 데다가, 원도심 일대의 음주 문화가 바뀐 게 결정타였다. 어자원 감소로 크고 맛있는 국내산 대고등어를 구하기 힘든 것도 원인이다. 고등어를 잡는 대형선망 선단들도 점점 폐업하거나, 부산을 떠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시절이고 힘든 하루를 마치고 오랜 벗과 마주 앉아 소주 한잔과 함께 마음의 허기를 채워 주는 고갈비의 맛과 냄새는 우리 곁에 영원히 필요할 듯하다. 이 긴 겨울밤 고갈비와 함께했던 친구들, 그 시간이 문득 그리워진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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