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졸시/김도언(1972~ )
이름 없는 시인이
허름한 왼손으로
횟배를 앓는
늙은 개의 고독을 묘사하는 동안
아무도 행복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음을 알리던
우체부는 은퇴를 하고
노인들은 천식약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 긴 줄을 서고
부자의 어린 아들은
중세 영어를 배우고
꽃비는 그래도 쏟아지는데
어쩌자고 당신은 아름다워서
가난한 노동자는 설탕과 소금을 먹고
오늘 하루는 자전거 바퀴처럼 서럽고
이 세계는 폭설에 에워싸인
복숭아밭처럼 외로워졌구나.
-시집 〈가능한 토마토와 불가능한 토요일〉(2022) 중에서
행을 나눴지만 한 문장으로 이뤄진 시다. 시는 한 문장이라는, 그 한 문장에서 세계가 시작되고 끝난다는 이 세계, 시의 스승들이 남겨놓은 유언 같은 시다. 시인은 이 시시한 문학판 안에서 국외자를 자처하며 소외와 고독을 즐긴다. 시인이 시를 쓰는 동안 당신은 어쩌자고 자꾸 아름답고 가난한 노동자는 설탕과 소금을 먹는다. 노인과 부자의 어린 아들과 시인의 하루가 유화 같은 한 컷으로 시에 스며들 때 이 세계는 문득 폭설에 에워싸인 복숭아밭처럼 외로워진다. 시가 위대한 건 늘 쓸모없어 보이지만, 어느덧 언어의 제왕 자리에 올려 지기 때문이다. 특허도 내지 않고 언어를 발명하는 자, 그가 시인이다. 성윤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