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형 화재 '불쏘시개' 우려 키우는 외벽 마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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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주차타워 벽면에 접착물질 사용
재발 방지 위한 건축물 전수조사 시급

지난 9일 오전 부산진구 한 오피스텔 주차타워에서 불이 나 연기로 뒤덮혀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9일 오전 부산진구 한 오피스텔 주차타워에서 불이 나 연기로 뒤덮혀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9일 오전 부산진구 23층짜리 오피스텔 주차타워에서 불이 나 입주민과 인근 상가 상인 7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30여 명은 연기를 마셔 고통을 호소했으며 7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다행히 화재가 아침 무렵에 발생해 신속히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1시간 만에 큰 불길이 잡히면서 주차타워와 상가 1층 가게 일부를 태우는 데 그쳤다. 만일 인적이 끊긴 심야에 불이 났더라면 조기 발견과 화재 진압, 빠른 대피가 쉽지 않아 주차타워와 붙어 있는 오피스텔과 상가 전체로 옮겨붙어 큰 인명·재산 피해를 낳았을 게 분명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이날 화재의 원인 중 하나는 차량 170여 대가 들어갈 수 있는 대규모 주차타워 건물 외벽의 마감재로 불에 잘 타는 물질인 접착제가 사용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주차타워 외벽은 내부 물질이 접착제로 채워진 알루미늄 복합 패널로 마감돼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차타워 하부의 불길이 접착제에 힘입어 외벽을 타고 삽시간에 최고층까지 번지고, 불티가 인근 상가로 낙하하면서 자칫 대형 화재로 연결될 뻔했다. 현행법은 3층 이상 건축물에 불연성 외벽 마감재를 쓰도록 하고 있지만, 불이 난 주차타워는 규제 전에 건립된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취약 건물과 시설에 대한 지자체의 전수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또다시 나오는 이유다.

앞서 2017년 부산시가 전체 건축물의 외장재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부상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에 따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스포츠센터 외벽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돼 피해를 키웠던 게다. 하지만 시는 조사를 중단해 버려 현재 건축물 외장재 전반에 대한 기초 통계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예산·인력난 때문이라고는 해도 후속 조치를 하는 척하다 대책 마련을 외면한 건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격이라 보여 주기식 무책임 행정의 ‘끝판왕’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부산은 최근 행정안전부가 평가해 발표한 2022년 전국 지역안전지수의 화재 부문에서 낙제점인 최하위 5등급을 받은 바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주차타워 화재를 계기로 전 지역의 가연성 외부 마감재 건물·시설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돼야 마땅하다. 화재 취약 건축물 말고도 대형 화재의 불쏘시개 역할이 우려되는 각종 시설물이 산재한 까닭이다. 지난달 29일 46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과천 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는 터널을 덮은 열 가소성 플라스틱이 피해를 키웠다. 부산에도 이런 방음터널이 6곳이나 된다. 정확한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책을 수립하고, 이를 철저히 이행할 때만이 화재 참사의 불씨를 완전히 끌 수 있을 것이다. 대형 화마는 시민의 안전불감증과 복지부동한 행정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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