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빨라지는 국민연금 개혁 시계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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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금 받는 시기 늦춰 ‘정년 연장 논의’ 방아쇠 당긴다

국회 특위 개혁안 초안 이달 공개
복지부 5차 재정추계도 맞춰 발표
10월 연금 개혁 최종안 국회 제출
 
34년간 개혁 단 두 번, 재정 악화
보험료율 9% OECD 평균의 절반
저출산 고령화, 기금 고갈 앞당겨
 
지속가능성 위해 요율 인상 불가피
노후 보장까지 달성하느냐가 관건
연금 통합 등 근본 논의 뒤따라야
 
국민 공감대·리더십 ‘개혁 성패’ 좌우


국민연금 개혁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사진은 12월 12일 서울 중구 한국보건의료정보원에서 열린 ‘청년 대상 국민연금 간담회’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장면. 보건복지부 제공 국민연금 개혁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사진은 12월 12일 서울 중구 한국보건의료정보원에서 열린 ‘청년 대상 국민연금 간담회’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장면. 보건복지부 제공

국민연금 개혁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연금 개혁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고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연금 개혁 방향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달 말까지 개혁안 초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도 3월로 예정된 국민연금 재정추계 발표 일정을 이달 말로 앞당겨 속도감 있는 개혁 논의를 지원하기로 했다. 안정된 노후와 기금 고갈에 대한 불안감으로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 왜 필요한가

2018년 재정추계에서는 국민연금을 현행(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대로 유지하면 기금이 2042년 적자로 전환된 뒤 2057년 고갈될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2003년 1차, 2008년 2차, 2013년 3차, 2018년 4차 등 5년마다 국민연금 곳간 상태가 어떤지 진단하는 재정추계를 해 오고 있는데 저출산 고령화로 기금 고갈 시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발표될 5차 재정추계에서는 4차 때보다 1~2년 더 앞당겨질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39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 기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 시기를 1년씩 더 앞당겼다. 어쨌든 현재의 20대들이 국민연금을 받아야 할 시기에는 기금이 모두 고갈된다는 이야기다.


■정치 논리에 밀린 개혁 논의

국민연금은 1988년부터 35년째 시행 중이다. 초기 보험료율 3%에 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인 소득대체율 70%를 보장하는 제도로 출발했다. 보험료율은 5년마다 3%포인트씩 9%까지 높이기로 돼 있었다. 문제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와 고령화로 기금 고갈이 불을 보듯 뻔한데 개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35년간 개혁은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뿐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 연령을 60세에서 5년마다 1세씩 2033년 65세까지 늦췄다. 노무현 정부는 보험료율을 12.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돼 소득대체율만 2028년까지 40%로 인하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기금 고갈 논란이 커지자 더 내고 더 받는 개편안이 추진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24년째 보험료율은 9%를 유지 중이다. OECD 회원국 평균 18.3%의 절반 수준이다.


■용돈 연금 vs 노쇼 연금

국민연금과 관련해서는 본격적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5060 세대는 물론이고 첫 걸음을 뗀 2030 세대까지 전 연령대에서 불만이 높다. 5060 세대는 현재 용돈 수준으로 전락한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생계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60세 정년인데 63~65세인 연금 개시 시기까지 소득 공백 기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다. 반면에 2030세대 사이에선 퇴직 후 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불만이 팽배하다. 수십 년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정작 자신이 받아야 하는 시기가 되면 기금이 고갈돼 국민연금은 떼이는 돈이라 생각한다. 가뜩이나 취업난 주택난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인데 기성 세대 연금까지 떠받쳐야 하느냐는 불만이다. 국민연금 논의가 자칫 세대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지점이다.


■더 내고 덜 받는 vs 더 내고 더 받는

민간자문위는 보고서에서 현재 연금 제도의 기본 틀은 그대로 두고 급여나 보험료율 등 주요 모수를 개혁하는 모수 개혁을 제안했다. 급여 수준을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과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그에 따라 보험료율도 인상하는 방안이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올려 2036년 15%까지 올리는 안 등이 알려지고 있다. 2033년부터 65세인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7세로 늦추고 현행 59세인 의무 가입 연령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초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 등 직역연금 개혁도 언급됐다.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인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연금 수급 연령은 2033년 기준 65세인데 기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67세로 늦추고 현행 59세인 의무 가입 상한 연령도 더 늦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연령 조정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안 그래도 심각한 노후 소득 공백과 연금의 신뢰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자문위의 생각이다”고 말했다.


■프랑스 연금 개혁 전 세계가 주목

일본은 2004년 13.58%였던 보험료율을 장기간 조금씩 인상해 18.3%까지 올리고 연금액은 임금과 물가 상승을 반영하되 기대수명과 출산율에 연동하도록 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통합으로 형평성 불만도 잠재웠다. 일본의 개혁이 성공한 데는 장기간에 걸친 국민 공감대 형성과 고이즈미 총리의 결단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마크롱 정부가 연초부터 구체적 연금 개혁안을 내놓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개혁안의 골자는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늘리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춰 기금 고갈을 막겠다는 것이다. 올 여름부터 법정 정년을 현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 또는 65세로 높이는 것이다. 정년(60세)과 연금 수령 연령(65세)이 다른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정년을 채우자마자 연금을 받는다. 주요 노조 단체들이 파업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연금 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후보장·재정안정 두 토끼 잡을 수 있나

국회 특위는 다양한 논의와 각계 의견 수렴 후 최종안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 대립과 2024년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개혁 논의가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우리 보험료율이 두자릿수인 다른 나라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OECD도 우리의 보험료율이 지나치게 낮다고 본다. 결국 더 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고 가입 연령 역시 높이는 경우다. 더 오래 가입시키고, 더 늦게 연금을 수령하게 해야 기금 고갈 시점이 늦춰진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정년 연장 논의가 불가피하다. 연금도, 소득도 없는 ‘공백’ 기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연금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면 자연스레 정년 연장 논의에 불이 붙을 것이란 관측이다. kyk93@busan.com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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