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계묘년 정치, 뭣이 중헌디?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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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복합적 경제위기 닥쳐 생활고 가중
정치권, 현안 뒷전인 채 정쟁 일삼아
올해 국내외 경기 더욱 나빠질 전망
경제난 극복·민생 안정에 전념해야
죽을 각오로 나서야 조기 해결 가능
여야 협치와 민의 챙기는 노력 절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0일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할 때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동행해 여야 간에 '이재명 방탄' 논란을 빚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0일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할 때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동행해 여야 간에 '이재명 방탄' 논란을 빚었다. 연합뉴스

‘국궁진췌 사이후이(麴窮盡膵 死而後已).’ 몸을 굽혀 온 힘을 다하며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는 의미다. 속뜻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비장한 결심이 담긴 표현이다. 이는 228년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재상 제갈공명이 두 번째 위나라 정벌에 나서면서 유비의 아들인 2대 황제 유선에게 올린 ‘후출사표’에 나온다. 위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문장이다.

이 문구를 중국 지도자들이 즐겨 사용했다.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은 1956년 쑨원 탄생 90돌을 기념해 중국을 개조하고 변화시키는 데 평생을 바친 쑨원을 “진정으로 ‘국궁진췌 사이후이’에 충실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국궁진췌 사이후이’는 저우언라이 전 총리가 평생 간직한 좌우명으로도 유명하다. 1989년 덩샤오핑 전 주석이 은퇴 선언 후 권력 이양을 시작했을 때 후계자로 지명된 장쩌민 전 주석은 같은 말로 다짐해 신임을 얻기도 했다.


‘국궁진췌 사이후이’는 지금, 한국 정치에도 유효하다.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정신 자세이자 시급한 업무 태도지 싶다. 계묘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몹시 힘들었던 지난해보다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놓여 국민 생활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한 한 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가 여야 정치권에 절실히 요구된다.

세계은행(WB)은 이달 10일 올 세계 경제성장률이 1.7%에 그친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작년 6월 전망한 3.0%보다 1.3%포인트나 낮췄다. 글로벌 경제가 성장 둔화로 극심한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1.7% 성장률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수출로 먹고살 만큼 세계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아 휘청거릴 우려가 크다. 최근 정부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모두 올해 수출 부진과 내수 경기 둔화 탓에 1.6~1.8%의 저성장을 예측한 게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에 따른 고통은 오롯이 국민 몫이다. 이미 직장인과 자영업자 등 대부분 서민은 소득이 변함없거나 감소한 반면 물가와 금리는 계속 치솟아 정말로 살기 팍팍하다며 아우성이다. 저소득층은 생활고에 하루하루를 버티기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더욱이 연초부터 전기료가 대폭 올라 가계 부담이 커졌다. 시내버스와 택시,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 요금과 각종 보험료마저 줄줄이 인상될 조짐을 보인다. 혹독한 민생경제 한파 속에 예년에 비해 일찍 다가온 설 명절을 쇨 엄두가 안 난다는 사람이 숱하다. 이러다가 자칫 민생이 도탄에 빠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국가 경제과 국민의 삶이 녹록지 않는데도 실효적인 처방이 제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와 민생을 위한 정치가 사실상 실종된 까닭이다. 집권당과 거대 야당이 엄중하고 위급한 경제난과 민생고는 뒷전인 채 허구한 날 이념이나 당리당략을 앞세워 대립한다. 사사건건 충돌하며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은커녕 정치 혐오감과 불신을 안긴다. 가뜩이나 힘겨운 국민의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여야 간 일상화한 정쟁은 마치 집토끼와 산토끼가 하늘땅에 온갖 천적이 우글거리는 들판에서 먹이에 눈멀어 무방비 상태로 다투는 꼴이다. 그 결과가 미국의 한국산 전기차 차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무장력 강화 움직임, 중국의 한국인 단기비자 발급 중단일 테다. 여야는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을 두고도 대책 마련 대신 전·현 정권의 책임 공방만 일삼아 북측의 분열 책략에 놀아나는 모양새다. 여야가 그동안 정쟁에 낭비한 열정과 시간의 절반이라도 경제 활성화와 국민 고충 해소에 쏟았더라면 복합적으로 닥친 위기 중 일부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여러 현안 해결에 머리를 맞대 몰두하지 않으면 국가와 국민의 명운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모든 역량을 모아 협치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여야는 신년 벽두부터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 받들기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방탄’으로 바쁜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벌써부터 관심이 내년 4·10 총선으로 쏠리고 있다. 여야가 최우선적으로 좇아야 할 대상은 양측의 강성 지지층을 뺀 국민 다수의 민심이다. 2016년 영화 ‘곡성’을 통해 사회의 유행어가 됐던 명대사를 인용해 여야의 행태에 대해 “도대체 뭣이 중헌디?”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정치권이 ‘국궁진췌 사이후이’ 실천을 위해 경쟁하기 바란다. 지독한 어려움이 예견된 올해, 정치가 국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어느 당이든 민의의 심판을 받기 십상이란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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