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인류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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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저널리스트 활동 그레이엄 핸콕
‘1만 2000년 전 초거대 문명 흔적
멸망 직전 참상 기억 위한 기념물’ 주장
반면 인류는 집단 기억 상실증 걸린 듯
새로운 1년 시작하는 지금은
처참한 기억과 결별 ‘축복의 시간’

〈신의 지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레이엄 핸콕은 맹렬하게 학술 탐사와 저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전공은 고고학으로, 그중에서도 그는 1만 2000년 전에 사라졌다는 초고대 문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사하고 보도하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1만 2000년 이전에 이미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형성한 바 있었는데, 그 문명은 외형적으로는 사멸되었지만 그 흔적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문명의 흔적은 주류 고고학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증거들이기도 한데, 1만 2000년 전에 수렵 생활에 하던 인류로서는 도저히 건설할 수 없고 흉내 낼 수도 없는 건축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레이엄 핸콕은 유사 고고학자 혹은 사이비 학자로 비난받기도 한다. 그의 주장은 인류가 신석기를 거쳐 진화했다는 주류의 발전론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많은 관련 학자들이 그의 주장을 허구적 창작으로 치부하거나, 상징적 해석에 대한 오해로 간주하기도 한다. 솔직히 나에게는 1만 2000년 이전 초거대 문명이 있었다는 주장의 진위를 가늠할 학문적 역량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의 이면이 존재할 수 있고 어쩌면 그렇게 숨어 있는 진리가 세상의 모습을 더 올곧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기대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그러한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 기대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레이엄 핸콕의 이야기를 한 것은 그가 했던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불가사의한 거석 문명의 흔적이, 대부분 그날, 그러니까 지구가 멸망 직전까지 간 그날의 참상을 후대가 기억하도록 만든 기념물이거나 그날의 공포를 재현하지 않기 위한 방어책 중 하나라고 말한다. 고대의 문명은 초거대 문명을 이룬 자신들조차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던 그날의 피해를 기억하고 그 피해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일종의 조치를 수립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레이엄 핸콕은 현대 인류는 그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고고학이 과거의 유물과 인류의 유산을 통해 인간의 삶과 정신 궤적을 추적하는 학문이라면, 그들이 기억하고 남겼을 ‘그날의 기억’을 회복하고 그들의 주장대로 대비하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인류는 집단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그날의 기억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레이엄 핸콕과 같은 고고학자들은 인류의 과거를 낱낱이 캐내어야 한다고 믿는 눈치이지만, 그날의 공포를 체험했던 인류로서는 어쩌면 그날의 기억을 가급적 잊고 싶어 했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 모두는 과거 기억과 결별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만일 망각이 없고, 새로운 시작이 없다면, 인류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해야 할지도 모른다.

1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은 이를 현실적으로 대변한다. 우리는 1년이 지나면, 묵은 것을 버리자고 말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1년을 맞이하면, 안 좋은 것은 잊고 다가오는 것에 집중하자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수많은 시간을 통째로 없앨 수야 없겠지만, 우리를 처참하게 했던 기억을 망각의 그늘 밑에 놓아두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1년을,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모든 기억을 통째로 잊은 것처럼 행동할 수야 없지만, 지난 1년을 그리고 그 이전의 수많은 ‘1년들’을 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1년을 건설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간이 온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충실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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