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부울경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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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기획취재부장

새해 부울경 시도민 덕담·희망보다
팍팍한 현실, 소멸하는 삶터 이야기
편 가르기·현실 안주는 파국만 초래
통합·혁신·강한 리더십이 도약 계기
기업·청년·외국인 모두 포용하며
더 큰 꿈 싹트는 부울경 실현해야

새해를 맞아 지인들과 마주한 자리. 여러 이야깃거리를 따라 흐르다 결국 종착지는 ‘부울경의 현실’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부울경이 살기 좋은 곳이긴 하나, 살아가며 헤쳐가야 할 처지가 해가 갈수록 녹록하지 않아서다. 실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서로 응원해야 할 연초부터 이 데자뷰를 벗어나지 못한 지 오래다.

〈부산일보〉는 올해 신년기획의 한 테마를 ‘사람 모이는 도시로’로 정했다. 더 이상 부산권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계속 탈출한다. 기획보도를 하면서 2035년으로 예상됐던 부산과 인천의 인구 역전이 실은 2028년께로 앞당겨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부울경 최대 도시,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위상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부산이 처한 상황은 그만큼 다급하다.


전국을 집어삼키는 수도권에 대항하는 부산·울산·경남권의 3대 미래 동력은 메가시티, 2030부산엑스포, 가덕신공항이다. 한데 어느 것 하나 확실히 이뤄 놓은 게 없다. 핵심인 메가시티는 성사를 코앞에 두고 단체장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침몰했다. 가덕신공항마저 그 위상이 타지에 위협받는다. 이대로는 파국이다.

운 좋게도 연수차 1년간 지냈던 미국 텍사스주 주도 오스틴은 성장하는 도시다. 남부의 명문 텍사스대학(UT)이 인재를 배출하는 교육·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애플과 구글, 삼성전자는 물론 혁신의 아이콘인 테슬라까지 세계적인 기업들이 계속 오스틴 권역에 둥지를 튼다. 실리콘밸리 오라클도 최근 본사를 오스틴으로 옮겼다.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니 당연히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 든다. 10년간 인구증가율이 30%를 웃돌고, 45세까지 청년 인구가 절반에 가깝다. 도시가 살아 숨쉬고, 도시 특유의 문화와 축제가 꽃을 피운다. 그러니 미국 청년이 살고 싶어하며,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대체 오스틴의 비결은 뭘까. 단 하나를 남긴다면,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으로선 무시 못할 큰 혜택이다. 개인으로 봐도 캘리포니아나 뉴욕 등 타지에 비해 세금 부담이 현저히 낮다. 그렇다고 도시의 세수가 부족하지도 않다. 기업친화적인 환경이 덩달아 경제를 성장시키며 선순환한다.

그렇다면 부산은? 부울경 시도민의 세금 목줄을 정부, 즉 수도권이 쥐고 있다. 세금 규모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부산권에 오는 기업에 지역 은행이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춘다면 민간 기업의 부산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진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부산형 금리를 내세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역 은행의 금리가 월등히 낮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지역 은행 수익이 나지 않아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차라리 민·관이 손을 잡고 대대적인 부울경발 봉기를 일으키는 건 어떨까. 지역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낮추도록 만들어 청년과 인재를 더 붙잡고, 지역 공기업의 지역대학 인재 할당 비율을 더 높이자는 것. 이에 더해 부울경에 남거나 찾아오는 국내외 청년, 학생들을 위한 대규모 민·관 기금 마련을 추진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기업에 양질의 인력을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부산일보〉는 최근 ‘이방인이 된 아이들’ 기획 보도로 가파르게 늘고 있는 부산권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의 현실을 알리고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보도 이후 가장 많은 반응은 ‘그런 아이들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팍팍한 삶을 살다 보면 눈길을 주기 힘든 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기사 댓글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로 못할 악플이 무수히 달렸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 청년 탈출로 소멸하는 지역이 문을 걸어 잠근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하자고 외치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사회 시스템은 수도권에 비해 한참 뒤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나마 법무부 부산출입국외국인청과 부산시, 지역 대학 등이 함께 인구감소지역 취업비자를 시범 도입하며 생활인구를 다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부울경 시도민이 눈여겨 볼 지점은 바로 리더의 자질이다. 부산의 박형준식 외유내강 리더십, 대구 홍준표식 돌격형 리더십 가운데 승자는 누구일까. 중차대한 현안을 돌파해야 할 박 시장의 리더십에 한계가 온 건 아닌지 부산시민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경남과 울산 시도민도 메가시티 등 주요 현안을 두고 내린 단체장의 결정이 옳았는지, 선거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부울경은 편가르기를 벗어나 산업 재편으로 전남 남부, 경북 해안까지 포용하는 신남부권 중심지가 되는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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