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토끼와 거북이 그리고 현명한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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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철 한국해양대학교 항해융합학부 교수

희망찬 계묘년, 흑토끼의 해가 밝았다. 그 유명한 이솝 우화 속에서 토끼와 거북이는 달리기 시합을 한다. 시합 초반 토끼는 자신이 압도적 기량으로 앞서자 느림보 거북이가 뒤처진 걸 보고는 방심해서 중간에 잠을 잔다. 그러는 사이 거북이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기어가서 달리기 시합에서 토끼를 이긴다. 흔히 능력만큼이나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할 때 인용되는 우화다.

항해사는 화주의 주문을 받아 선박에 실린 화물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대양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운송하는 책임을 진 세계 경제의 핵심인력이다.

여기 두 명의 항해사가 있다. 한 사람은 매우 오만하고 지극히 이기적인 성향이지만, 아주 정확하게 선박과 화물의 상황을 진단하고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지능지수(IQ)가 매우 높은 항해사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실력은 앞선 사람만큼 뛰어나지는 않지만, 배려심이 깊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 선박 내외 구성원들과 잘 화합하고 소통한다. 그래서 그는 선박 조직의 팀워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친절하고 멋진 항해사이다.

여러분이 해운선사의 채용담당자라면, 이들 두 사람 중 어느 항해사에게 선박과 화물을 맡기겠는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첫 번째 항해사가 채용 시 인기 있는 지원자였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 아니 앞으로 살아가게 될 미래에는 두 번째 항해사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 본다.

그 이유는 이렇다. 상황을 약간 바꿔보자. ‘디지털 전환’의 시대,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의 시대가 가속화되면, 인공지능(AI) 기반 선박 운항 기술을 통해 인공지능(AI)이 수집한 정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든 항해사가 정확한 예측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가정할 수 있다. 과연 그렇게 되면 두 명의 항해사 중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

아마 대부분 화물 선주나 해운선사는 선박 내 구성원의 상황에 진정성 있게 공감하고, 선박 또는 해상에 있는 상대방의 상황을 충분히 배려하여 소통하며, 업무 상황에서 상대방과 따뜻하고 세심하게 소통할 수 있는 감성지능(EQ)이 높은 항해사를 택할 가능성이 커질 것 같다.

그럼,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자. 이번에는 단순히 인공지능(AI) 기반 진단이나 예측을 무조건 맹신하지 않고, 실제 항해사 자신의 승선 경험과 실무 노하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의 데이터를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선박과 화물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책임 있는 조치를 할 수 있는 ‘현명한 항해사’라면 더 좋지 않을까. 다시 말해, 항해사가 인공지능(AI)이 보내는 정보와 예측의 강점과 한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하여 선박의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공지능(AI) 시대라고 일컫는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지능(IQ)과 감성지능(EQ)을 뛰어넘어 디지털 환경에서 인간중심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를 디지털지능(DQ)라고 일컫는다.

디지털지능(DQ)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이익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나아가 자연과 환경을 고려하여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능(IQ)이 높은 사람은 똑똑하고, 감성지능(EQ)이 높은 사람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면, 디지털지능(DQ)이 높은 사람은 현명하다.

현명하다는 것은 기계에 종속되거나 기계를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 추론과 인간의 가치에 기반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여전히 입시 경쟁에 매몰되어 지능(IQ)이 높은 인재 양성에 혈안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공감 능력조차 부재한 어른이 즐비하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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