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수세(守歲)와 삶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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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부산일보DB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부산일보DB

“젠장,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늘 이런 식이세요?/ 뭐가?/ 본인 능력을 못 믿는 거요./ 당연하지. 해마다 더 심해지고 있어./ 매년 성공을 거두시잖아요./ 성공보다 의심을 더 키우는 게 있나?”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20세기 조형미술의 대가다. 가늘고 기다란 뼈대에 거친 질감으로 인체를 극도로 단순하게 조형화했다. 저명 작가이면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세속의 성공을 경계했다. 자코메티의 전기를 쓴 제임스 로드는 젊은 시절에 자코메티의 초상화 모델로 18일을 함께했다. 이 과정을 기록한 책이 〈작업실의 자코메티(A Giacometti Portrait)〉(1965)다.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2017)의 원작이기도 하다.

초상화 작업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두세 시간, 아니 길어야 한나절 정도면 충분하리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잿빛 붓질로 지우기를 백여 차례나 반복했다. 있는 그대로 그리기란 불가능하다고 되뇌면서도 대상의 진실을 시각화하려는 분투를 결코 중단할 수 없었다. 열망은 언제나 절망에 닿았다. 그러나 절망의 끝은 이내 새로운 열망에 맞닿았다. 끝내 도달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가야 할 곳을 향해 신발 끈을 거듭 고쳐 맨다. 그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자코메티에게 ‘지우기’란 ‘그리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자코메티의 조형작품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살도 피도 없이 나약하고 앙상하지만 부릅뜬 눈만큼은 날카롭게 빛난다. ‘가리키는 사람’(1947)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일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일까. ‘걸어가는 사람’(1960)은 삶의 고뇌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아득하기 그지없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채 그저 걸어야 하는데도 잘 걸을 수 없는 상황이 내내 아리다. 갖은 상처를 딛고 살아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이 슬프다 못해 처절하다. 그가 빚어낸 인물은 어떤 철학자의 언명보다도 강렬하다.

초상화에는 완성이 없단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데도 살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걸어야만 하는 것이 인간 실존의 운명이다. 그 길 위에서 자주자주 출렁이는 마음자리를 어떻게 화폭에 담을 수 있을까. 자코메티가 제임스 로드의 초상화를 백여 차례 그렸다면, 우리 삶의 초상화는 어떻게 완성할 수 있겠는가. 내일은 음력 섣달그믐이다. 묵은세배로 지난해를 보내고, 집안 곳곳을 환하게 밝혀두고 밤새우며 새해를 맞이한다. 이러한 풍습을 수세(守歲)라 한다. 등불이 가닿는 자리는 빛 하나 없는 그믐밤이 아니라 새날의 아침이다. 등불 아래 지난해의 초상을 지워도 좋다. 아쉬움도 두려움도 물리치고 지난날을 지워내고 새로운 초상을 그려 나가는 것이 삶이 아니랴. 이날, 환하고도 따뜻한 등불을 밝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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