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마음은 벌써 고향' 기부제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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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엔데믹으로 한결 가벼운 귀성길
고향사랑기부제 명절 풍성함 더해

지자체별로 답례품 경쟁 치열
지역 현안 맞춤형 개발 노력 필요

지역 연대로 기부 연속성 유지
정부·정치권, 재정분권 앞장서야

이대호 선수가 지난 10일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고향사랑 기부제 일일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여해 고향사랑 모의기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호 선수가 지난 10일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고향사랑 기부제 일일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여해 고향사랑 모의기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일상의 회복’ ‘명절의 회복’ 기미가 완연하다. 설 연휴를 앞둔 명절 기상도는 한마디로 쾌청이다. 덩달아 귀성길에 오르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일상이 돌아오면서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 게 효도’라던 현대판 장승은 뿌리뽑힌 지 오래다. ‘이번 명절에는 안 와도 된데이’ ‘불효자는 ‘옵’니다’ 따위의 플래카드가 언제 나붙기나 했나 싶을 정도다.

실내 마스크 의무 해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진자 7일 격리와 더불어 일상을 옥죄던 마스크로부터 해방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방역 당국은 실내 마스크 해제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판단 아래 이달 말께 마스크 착용 여부를 자율에 맡길 참이다.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지 3년 만에, 3000만 명에 가까운 확진자와 3만 30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찾아온 일상 회복이다.

고향 찾는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이번 설에 부산 시민 147만 5000명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전망됐다. 부산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337만 명 가운데 43.79%에 달하는 시민이 귀성길에 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목적지별 예상 인구인데, 경남·울산이 86만 명(58.3%), 경북·대구가 28만 명(19.1%), 서울·경기·인천 수도권이 16만 명(11.2%)으로 집계됐다.

부울경이 본디 하나라는 것을 입증하는 조사다. 가까운 고향을 찾는 시민의 발걸음이 가벼운데다 선물꾸러미까지 더해져 한결 풍성한 명절이 되었다. 새해부터 시행에 들어간 고향사랑기부제 덕분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고향에 기부하고 지자체는 이를 모아서 주민 복리에 사용하는 제도로, 기부자에게는 세액공제와 기부한 고향의 답례품이 제공된다. 연간 500만 원 한도로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 10만 원 초과분은 16.5%를 공제받는다. 기부 금액 30% 이내에서 답례품도 준다.

설을 앞두고 고향(?) 사랑을 실천할 목적으로 ‘고향사랑e음’에 회원 가입을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누리집에서 밝힌 고향의 정의다. 기부자 본인의 주민등록등본상 거주지를 제외한 지역자치단체가 고향이란다. 고향에서 나고 자라 고향에 살고 있는 시민은 졸지에 타향을 고향으로 삼아야 할 판이다. 여기서 연대의 필요성이 엿보인다. 기부제 취지가 지방소멸을 방지할 목적이고, 아직 이 제도를 모르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하니 일단은 지역이 합심하여 제도부터 안착시키고 볼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부울경 메가시티가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부산 시민 가운데 고향 찾아 떠나는 귀성객의 60% 가까이가 경남과 울산이어서 부울경이 윈윈하는 상생 방안을 찾는다면 지역의 살림살이는 더욱 윤택해질 게 불을 보듯 자명했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해오름동맹 도시인 경주·포항시 시장과 상호 교차 기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부울경 메가시티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답례품을 둘러싸고 노심초사하는 지자체도 많다고 한다. 고향사랑e음에 들어가 보니 부울경에서는 부산 서구·부산진구, 울산 남구 3곳이 아직 답례품을 준비하지 못했다. 지자체마다 특산품이 사뭇 달라 기부의 ‘부익부 빈익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올 한 해 하고 그만둘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기부의 연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특산물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역 특성에 맞는 눈길 끄는 답례품을 마련하는 것은 지자체의 몫이다. ‘불멍·별멍때리기’ ‘템플스테이’ ‘벌초 대행’ 등 이색적인 답례품도 이미 상당수다. 2008년부터 ‘후루사토(고향) 납세’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으로 눈을 돌리면 지역 현안을 스토리텔링이나 크라우드펀딩과 연결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벤치마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의 기부만으로 지방소멸을 해결하려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가 48.7%(2021년 기준)에 그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고, 243개 지자체의 절반 가까이가 지방세 수입으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재정분권이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8대 2 수준에 그치고 있는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7대 3, 6대 4로 좁혀 나가는 개혁이 절실하다.

고향사랑기부제 시행으로 귀성이 아니라도 마음은 벌써 고향에 닿는 길이 활짝 열렸다. 기부자의 마음을 늘 고향에 머물게 하려면 지자체마다 시민의 마음을 얻는 데 최우선인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답례품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고, 지역을 찾는 기부자를 환대하는 등 연속적인 기부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2023년 계묘년이 지역 연대와 고향 사랑으로 지방소멸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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