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3만 원권 지폐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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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지폐가 발행된 것은 1950년의 일이다. 1950년에 설립된 한국은행이 7월 22일 1000원권과 100원권을 처음 발행했다. 1000원권에는 이승만, 100원권에는 광화문이 새겨졌다. 1953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 타개를 위해 긴급통화조치를 단행, 화폐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하고 100·500·1000환권 지폐를 발행했다. 당시 지폐에는 모두 이승만 초상이 들어갔는데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난 뒤 세종대왕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액면 체계가 갖춰진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1962년 화폐개혁으로 환에서 원으로 복귀 후 이순신과 거북선을 새긴 500원권이 고액권 지폐 역할을 했다. 고액권 필요성으로 1972년 5000원권, 73년 만 원권이 발행된데 이어 75년에는 1000원권도 나왔다. 500원권 지폐는 1982년 500원 짜리 동전 등장으로 사라졌다. 만 원권 도안은 애초 석굴암과 불국사였는데 종교계 등 반발로 세종대왕으로 바꿔 발행했다.

‘세종대왕’ ‘배춧잎’이란 별칭으로 36년간 고액권 지위를 누렸던 만 원권은 2009년 5만 원권에게 지위를 내줘야 했다. 한은은 만 원권 발행 후 물가는 12배, 국민소득은 150배 상승했는데 최고액권 만 원 유지로 경제 주체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물가상승과 ‘차떼기’(뇌물수수), 위조 범죄를 부추긴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았다. 지하경제 주범이라는 의혹도 여전하다. 2011년 불법 인터넷 도박업자가 마늘밭에 묻어 둔 5만 원권 110억 원이 굴삭기 작업 중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5만 원권 발행 당시 김구 선생과 대동여지도를 새긴 10만 원권이 준비됐다 무기한 보류되기도 했다.

이번 설 연휴 3만 원권 발행이 화제가 됐다. 가수 이적이 인스타그램에 “만 원에서 5만 원은 점프 폭이 너무 크다”며 “조카 세뱃돈으로 호기롭게 5만 원권을 쥐어 주고 돌아서 후회로 몸부림친 수많은 이들이 3만 원권 발행을 열렬히 환영하지 않겠느냐”는 글을 올린 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으면서다. 만 원권 세 장을 세어 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정서상 좀스럽다는 이야기다. 5만 원권 등장 후 씀씀이가 커졌고 경조사비 부담도 늘었다는 이야기도 뒤따랐다. 하태경 의원은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받았다. 가뜩이나 고물가와 경제난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세뱃돈 걱정까지 해야 하는 서민들의 삶이 고달프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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