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라질 위기의 우리 문화재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조철현 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전승교육사

우리 국악 중에서 대금산조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발전한 '한주환류대금산조'와 시나위를 바탕으로 강백천이 만든 '강백천류대금산조' 두 분류로 크게 대별할 수 있다.

한주환류대금산조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락이 다양하고 화려한 편인데 이를 '소리더늠대금산조'라고 일컬으며 이생강류·서용석류·원장현류 등 대부분의 대금산조들이 여기에 속한다.

강백천류대금산조는 시나위를 바탕으로 가락이 짜여 졌는데 시나위는 가락이 다소 즉흥적이며 무가를 따라 연주하므로 애원성이 많다. 그래서 강백천류대금산조를 '시나위더늠대금산조'라고 일컫는다.

한주환류 계통의 산조들에 비해 강백천류대금산조의 경우는 모든 면에서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 음악적 색깔이 근본부터 다르다.

강백천은 1971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전북 남원 출신인 강백천은 1970년부터 부산에 정착했으며 1982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난 후 그 뒤를 이어 김동표가 1993년 8월에 보유자로 인정되어 말년까지 활동하다가 2020년 6월 타계하였다.

필자는 1970년대 말부터 김동표 선생의 지도하에 있었고 1996년 7월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어 현재까지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시나위더늠대금산조'인 강백천류대금산조는 50년이 넘도록 국가무형문화재로 그 맥을 쭉 이어 오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소리더늠대금산조'는 서용석과 이생강, 이렇게 두 명이 보유자 후보로 있다가 이생강이 1996년 12월에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1996년 12월 이후부터 대금산조는 예능보유자가 2명이 되었다. '시나위더늠'인 강백천류대금산조 예능보유자는 김동표, '소리더늠'인 한주환류대금산조의 맥을 잇는 예능보유자는 이생강, 이렇게 '강백천류대금산조' 와 '한주환류대금산조' 두 유파의 맥을 잇는 각각의 보유자가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백천류대금산조는 김동표 대에 이르러 그 성음이 많이 바뀌고 여러 면에서 심하게 변형되었는데 그 세부적인 요소들은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김동표 선생께서 강백천 선생의 연주 녹음테이프를 필자에게 건네주면서 스스로 연구해보라고 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줄곧 연구 분석해 온 결과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김동표 연주의 대금산조는 원래의 강백천의 성음과 많이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예능보유자가 세상을 떠난 지금, 강백천류대금산조를 제대로 연주하는 사람이 없다.

강백천이 연주한 산조와 다르게 변질된 김동표제대금산조를 연주할 엄두를 못 내는 까닭은 화려하고 세련되게 들리는 '소리더늠대금산조'의 유파들에 비해 고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시나위더늠대금산조'가 우직한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에 골동품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실제로 ‘무형문화재는 그 대상의 형체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문화적 환경 변화에 노출되어 변형되거나 급격히 사라져 갈 수 있다’라는 우려의 목소리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일례로 국악 계통의 다른 분야 전문가들조차도 대금산조는 서로 비슷하므로 유파의 개념이 필요 없다는 식으로까지 인식을 하게 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는 굿이나 농악 판소리와 같이, 같은 종목이라도 지역의 특성과 음악적 성격에 따라 분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대금산조도 '소리더늠대금산조'와 '시나위더늠대금산조'로 크게 구분하여 보전되어져야만 한다.

오랜 세월 국악에 전념해 온 필자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국가의 문화정책을 이끌고 있는 위정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여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