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공사비 인상 횡포… ‘깜깜이 증액’ 검증할 법 ‘난망’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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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잿값 폭등·고금리 지속 이유
기존보다 2배 내외 요구 잇따라
검증 절차 강화 법 국회서 낮잠
조합원, 적절성 판단 ‘속수무책’
강제성·실효성 담보 기준 절실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부산 부산진구 시민공원 촉진4구역 전경. 정종회 기자 jjh@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부산 부산진구 시민공원 촉진4구역 전경. 정종회 기자 jjh@

부산 시민공원 촉진4구역 재개발 사업을 맡은 현대엔지니어링이 기존 계약의 2.5배에 달하는 공사비 증액을 통보(부산일보 5월 1일 자 1면 보도)해 조합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할 전망이어서,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의 갈등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공사비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복수의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지금까지 통과된 건은 하나도 없다. 상황의 진전 없이 오는 29일 21대 국회가 종료되고,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계류 법안들은 자동 폐기된다. 극한 대치의 여소야대 형국에서 재개발·재건축 관련 법 개정안이 논의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계류 중인 개정안 가운데 대표적인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 개정안’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공사비 검증이 필요한 경우 시공사가 조합에게 공사비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규정이 담겼다.

또 사업시행자는 공사비 검증 결과를 조합 총회에 반드시 공개하고 공사비 증액 계약을 할 때 조합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깜깜이 공사비 증액’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재건축 패스트트랙과 함께 공사비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도시분쟁조정위원회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사비 검증 결과에 대한 분쟁을 도시분쟁조정위원회의 심사·조정사항에 추가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홍기원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공사비 검증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취지다. 사업시행자가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도출한 공사비 검증 결과를 조합원 총회에서 공개하고 공사비 변경 계약 시 반영 여부와 범위를 의결하도록 했다. 공사비 검증 결과는 한국부동산원에 반드시 통보해야 한다.

이런 법안들이 추가 논의 없이 국회에서 잠자는 동안 정부는 올초 지자체와 관련 협회에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배포했다. 공사비 산출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 설계 변경이나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법적 효력이 없는 단순 권고 사항에 불과해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부산의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도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필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명확한 근거 없는 시공사의 과도한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라며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으로 공사가 멈추면 결국 손해는 입주민들에게 돌아간다. 강제성과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동의대 강정규 부동산대학원장은 “공사비 인상 과정에서 적절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부동산원이 이를 하고는 있으나 여러모로 실효성이 부족하다”며 “아파트의 모든 주거시설을 하이엔드로만 고집하는 일부 조합도 이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시민공원 촉진4구역 조합에 기존 평당 449만 원이던 도급 공사비를 2.5배 수준인 1126만 원으로 인상해 줄 것을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시공사 요구대로라면 대다수 조합원들은 많게는 8억~9억 원에 달하는 추가 분담금을 지불하게 생겼다. 지난 2월에는 부산진구 범천1-1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539만 9000원이던 공사비를 926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해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접수된 전국의 공사비 검증 의뢰 건수는 2019년 2건에서 2022년 32건으로 16배 급증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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