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으로 보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7. 부산을 거쳐간 작가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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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부산, 예술을 꽃피운 다방

이봉상 '역광'(1957, 가나문화재단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이봉상 '역광'(1957, 가나문화재단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6·25전쟁 발발로 부산은 피란 수도가 되었고, 수도 환도 이전까지 약 1000일간 대한민국의 중심지가 됐다. 생존을 찾아 고향을 떠나온 피란민을 품은 도시. 부산은 전쟁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수많은 혼돈과 새로운 변화를 겪었다. 화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예술가와 토착 예술가들이 압축된 시공간 속에서 갑작스러운 교류를 경험하게 됐다. 대거 유입된 중앙화단의 작가들에 의해 부산화단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수집: 위대한 여정’에 소개된 작가들 또한 부산을 거쳐갔다. 권옥연, 김은호, 김환기, 박고석, 박노수, 변관식, 문학진, 이봉상, 이중섭, 유영국, 윤중식, 장욱진, 천경자 등이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왔다. 부산에서의 피란 생활과 당시의 경험은 이들에게 ‘창작의 씨앗’이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종군 화가로 전쟁이 야기한 잔혹한 현실을 화면에 담았다. 작가들은 당시 조선 최대 도자기 회사였던 대한도기의 기념품용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창작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전쟁기 부산의 예술을 살펴볼 때, 빠질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 바로 ‘다방’이다. 특히 광복동은 다방 골목으로, 부산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다방은 화가, 배우, 감독, 문인 등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장르와 관계없이 다방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전쟁이 주는 불안감, 슬픔, 허무, 분노를 털어놓았다. 이들에게 다방은 예술적 영감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장소이자, 서로의 소식과 안부를 나누고, 일자리까지 알선해주는 생계의 장이었다.

다방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역할 또한 겸했다. 당시는 전시를 열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으며 특히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전시를 여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산의 다방은 커피를 마시는 공간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다. 다방에서 다양한 작가의 단체전, 개인전이 열리고 작품 판매가 성사되기도 했다. 또한 다방은 작품에 대한 비평을 나누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한 이중섭은 최초 동인전을 부산에서 열었다. 바로 1952년 르네상스 다방에서 열린 ‘기조전’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열려 미술사적 의미가 남다른 전시로, 이중섭을 비롯해 박고석·이봉상·손응성·한묵 총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 없이 열린 전시이기에 다방의 마담이 작품 판매를 맡았는데, 당시 출품작 대부분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예술 향유를 위해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또 예술가에게 잠시나마 힘든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자유의 순간을 제공하는 예술 공간이 다방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전시장 전경.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경의 '조우'(196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전시장 전경.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경의 '조우'(196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부산화단에 서양화를 안착시키는데 기여한 부산의 ‘토벽동인’ 또한 1953년 르네상스 다방에서 창립전을 가졌다. ‘토박이’를 뜻하는 부산 거주 서양화 작가의 모임 ‘토벽동인’은 김경을 비롯하여 김종식, 김영교, 김윤민, 서성찬, 임호 등 부산미술 1세대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중앙화단과의 차별성을 주장하며, 지역 풍토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향토적 미의식’을 강조했고 1954년까지 세 차례 개최됐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그치지 않는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들의 부산 피란 시기 활동은 한국 미술사의 유의미한 족적이다. 그리고 도시 부산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중앙 중심의 미술문화가 아닌 부산을 거점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 현상을 목격하며 다양성을 갖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생존이 가장 중요했던 시절,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들. 이들의 작품을 부산에서 만나보는 기회라는 점에서 이번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 더욱 뜻깊게 느껴진다. 작가가 있었고, 이들의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가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이들의 유산을 만나게 되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 미술 특별전 ‘수집: 위대한 여정’은 29일까지 열린다. -끝-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정리=오금아 기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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