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은 '저출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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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후배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육아휴직에 이어 무급휴직까지 신청할 만큼 업무 복귀 의욕이 크고 자기 일에 대한 애정도 있는 친구였다.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줄지 않고, 돌 갓 지난 아이를 키우면서 전일제(풀타임) 근무는 부담스럽고, 마냥 휴직을 하고 있기에는 파트타임 일이라도 찾아야 하는 처지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 했다. 대기 순번이 길다고 하기에 국공립 어린이집인가 했더니 아파트 안 작은 사립 어린이집이란다. 그마저도 배 속에 있을 때 대기 순번을 걸어 놓아야 겨우 입성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같은 부산 안에서도 태어나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동(洞)에 유일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폐원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사립 어린이집마저 1년 넘게 기다려도 줄을 서야 하는 지역이 있으니,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지역이 대체 어디인가 싶다. 거기다 후배는 파트타임 일자리가 없어 여전히 구직활동 중이다.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1등 도시가 부산이라는 기사를 공유했더니 헛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한창 자기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가야 할 청년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후배 앞에 놓인 상황을 보며,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절로 헤아리게 된다.

육아 부담에 경력 단절하는 ‘육아맘’

아이 낳아 키울 자신 없다는 청년들

합계출산율 0.81명 최저 한국 현주소

저출산고령화위 부위원장 해임 논란

정치엔 뜨거운 관심, 정책엔 무관심

저출산 극복 장기 비전·대안이 중요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손꼽히는 고용불안이나 출산·육아 부담, 교육비와 주거 부담, 일 생활 조화의 어려움 등은 뭐 하나 쉬운 대책이 없다. 국가의 명운이 걸렸다고 할 만큼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거론한 바 있는데, 3대 개혁 과제 모두 ‘저출산’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2021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그만큼 ‘저출산’ 대책은 적응과 완화라는 두 방향 속에서 중대하면서도 시급한 국가 과제이기도 하다.

얼마 전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내놓은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이 언론의 주목을 한 번에 받은 바 있다. 아이를 낳으면 부동산 대출 빚을 탕감해 주겠다니, 솔깃한 대책이었다. 대출이자가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오르기만 하는 요즘에 말이다. 실제 다른 나라에서는 출산율 제고 효과를 본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정책 제시였다. 거기다 한국은 육아 보조금 비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이기도 하다. 나 전 부위원장은 “돈을 준다고 출산을 결심하지는 않으나, 돈 없이 해결되는 ‘저출산’ 극복은 없다”며 정책 추진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표 선거와 맞물린 대통령실과의 갈등 속에 결국 취임 석 달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됐다. 치열한 정치적 공방이 연일 이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실에서 즉각적으로 반박하며 해임까지 할 정도로 나 전 부위원장의 ‘저출산’ 대책 발언은 중대한 실책이었는가, 혹은 여당의 치열한 당권 경쟁 속에서 당대표 선거가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는가, 혹은 애초부터 감투 나눠 주기식의 잘못된 인사였으며 유력 정치인의 스펙 쌓기용에 불과했는가. 그 어떤 논쟁거리도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문제는 대통령실과 ‘저출산’ 타이틀을 단 정치인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대조적으로 ‘저출산’ 정책에 대한 차가운 무관심,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실은 나 전 부위원장이 내놓은 저출산 대책에 즉각적으로 반박할 정도의 적극성으로 저출산 대책 그 자체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대안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제시했어야 하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정책이 실종된 무책임한 정치에 시민들은 심한 피로감과 냉소를 느끼고 있다. 유력 정치인인 나 전 부위원장 역시 스스로 부총리급이라 자임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소임을 출마 여부만큼이나 고심하였는지 의문이다. 여론 역시 다르지 않다. 언론에서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봐도, 나 전 부위원장과 대통령실 그리고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둘러싼 기사가 대부분이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과제로서 심도 깊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정책은 실종되고 ‘저출산’이라는 말 자체가 진흙탕과도 같은 정치판의 싸움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2021년 기준 31.12%로, OECD 39개 회원국 중 가장 큰 것으로 발표되었다. 26년 연속 최악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 사회는, 정부는 아는가. 이 현실 속에서 오늘도 수많은 여성들이 독박육아를 마치고 육퇴(육아퇴근) 중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자신의 직장을 여전히 찾고 있다. 이들을 위한 정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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