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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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지은 집/강인숙

<글로 지은 집> 표지. <글로 지은 집> 표지.

이어령 선생은 2015년 대장암에 걸렸다. 생명에 시한이 생기자 선생은 조급해졌다. 쓰다가 끝내지 못한 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갈망했다. 아내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도 절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삶을 정리해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구십이 되어가는 동갑내기 부부가 하나는 아래층에서 ‘집 이야기’를 쓰고, 하나는 위층에서 ‘한국인 이야기’를 쓰면서, 각기 자기 몫의 아픔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글로 지은 집>은 빈손으로 시작해 원하는 서재를 갖춘 집을 갖는 과정을 다룬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다. 1958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신혼 단칸방부터 이어령 선생이 잠든 지금의 평창동 집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집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의 역정을 담았다. 책은 강인숙 관장의 입장에서 쓴 ‘한 신부가 단칸방에서 시작해 ‘나만의 방에 있는 집에 다다르는 이야기’다.

이어령 선생과의 결혼식 날 풍경, 집을 찾은 여러 문인과의 추억, 동네 한복판에서 두 눈으로 목도한 4·19와 5·16 역사의 현장, 이어령 선생의 집필 비화 등이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강인숙 관장은 세상에 나서 가장 기뻤던 해로 1974년을 기억한다. 남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준 해였다. 이어령은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가족이 늘고 글이 늘고, 그래서 북적였고 따뜻했고, 그러다가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펐고 쓸쓸했던 부부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강인숙 지음/열림원/392쪽/1만 9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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