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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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건축은 ‘짓는 행위’에 그치지 않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 있어
건축가의 사명과 역할 되돌아봐야

부끄러웠다.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를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토교통부 장관 소속으로 하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건축에 대한 인식이 국토교통부에 한정돼 있는 정부에 대한 실망과 함께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축 관련 법령 440여 개 중 국토교통부 소관은 91개로 20.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국토교통부 외의 정부 부처 소관으로 전체의 79.3%를 차지한다. 그래서 건축 정책을 범부처 차원에서 조정하고 통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2008년 대통령실 소속으로 설립됐다. 이후 2009년부터 국회 보고와 정례적 대통령 보고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로 분산된 건축 분야의 주요 정책을 조정해 왔다.


건축물의 질적 향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건축의 미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할 시기에 국가건축정책위원회를 국토교통부 장관 소속으로 변경한다니,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원래대로 대통령 소속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씁쓸했다.

프랑스 건축법 제1조는 ‘건축이란 문화의 표현이다. 건축의 창조성, 품격,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자연적 경관, 도시환경, 건축 유산의 존중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한국 건축법 제1조는 ‘이 법은 건축물의 대지·구조 및 설비의 기준과 건축물의 용도 등을 정하여 건축물의 안전·기능·환경·미관을 향상시킴으로써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건축은 건축물을 신축·증축·개축·재축하거나 건축물을 이전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프랑스 건축법의 ‘공공의 이익’이나 한국 건축법의 ‘공공복리 증진’을 보면 공공에 대한 생각은 같은 것 같아도 출발점이 다르다. 프랑스 건축법과 한국 건축법의 가장 큰 차이는 건축을 짓는 행위로 보느냐, 문화의 표현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이는 수단과 목적의 차이만큼 크다.

한국 건축법에서 ‘건축물의 대지·구조 및 설비의 기준과 건축물의 용도 등을 정하여 건축물의 안전·기능·환경·미관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모두 건축물을 만드는 수단이지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수단을 목적으로 혼동하게 되면 인간의 삶이 괴물로 되어 버린다고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그에 비해 ‘건축이란 문화의 표현’이라고 정의한 프랑스 건축법은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 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총합체로 건축을 보고 있다.

로마 시대에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를 통합적 지식인이자 장인(기술자)으로 정의했다. 그는 건축은 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건축가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습득한 통합적 지식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은 예술, 과학, 인문학에 정통한 지식인이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건축가가 이 모든 것들을 해낼 수는 없지만 건축에 있어 모든 학문의 융합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랜 시간 근대를 거치며 도시와 국가를 만들어 온 유럽과 달리 한국의 근대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6·25 전쟁을 겪고 소위 조국 근대화사업을 통한 압축성장 과정을 겪었다. 서양의 문물은 세련된 것이라 받아들이며 한동안 우리 것을 경시한 점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K-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어는 세계 언어학습 시장에서 중국어를 제치고 7번째로 높은 수요를 보이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가전은 LG전자 제품이라 한다. 올해 1월 5일부터 8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3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주최국인 미국 다음으로 한국 기업의 참가가 많았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제 문화와 기술 융합의 정점을 보여 줄 수 있는 K-건축이 남았다.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야 볼 수 있는 공연, 전시 등 여타 예술과는 달리 건축물은 길을 걷다가, 차를 타고 지나다가, 어느 여행지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좋은 건축물이 마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을 주민의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알기에 공공재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담는 건축, 불평등을 해소하는 건축,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축은 건축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문화, 기술의 융합과 더불어 국력에 걸맞은 성숙된 민주주의가 함께해야 가능하다.

새해, ‘왜 우리의 건축을 몰라 주냐’가 아니라 건축가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반성해 본다. 막힐 때는 원론을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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