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지방 대학의 정해진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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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희 한국해양대 총장·기계공학 박사

2023년 지구 인구는 80억 명이다. 보고에 의하면 식량, 에너지,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인구는 1960년대 초반의 30억 명가량이라고 한다. 세계는 그 이후부터 식량,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 왔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정해진 미래’, 즉 오늘날의 ‘생존 경쟁 시대인 오징어 게임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진 발생은 그 직전까지 누적된 에너지가 방출되며 일어나듯이,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 직전까지 누적된 인간 사회의 갈등 에너지의 순간적 방출로 발발하게 되었음에 비유될 수 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연결되어 순차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지금의 순간에 이르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위기 또한 이미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원인이 순차적으로 작동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철저하게 살펴야만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모든 위기는 여러 원인 누적돼 발생

‘수도권 집중’ 작동 연결 회로 파헤쳐야

일터, 삶터, 쉼터, 배움터 조성이 급선무

지방정부와 대학, 기업 머리 맞대야

지방 대학의 위기 원인을 크게 ‘수도권 집중’과 ‘학령 인구 급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겉보기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찬찬하게 그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봐야 한다. 수십년간 청년들이 왜 수도권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지, 학령 인구가 왜 급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작동 회로를 순차적으로 파헤쳐 하나씩 끊어 가야만 위기에 대한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여러 가지 팩트를 고려해 수도권 집중 원인의 연결 고리를 하나하나 나열해 보니 500가지 이상이 나온다. 책 한 권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내용이어서, 좁은 지면에 모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오늘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과 대안에 관련된 내용만 간략하게 풀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식이 수도권으로 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고려해 보자. 왜 아이들이 서울로 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하면 쉽게 수긍되는 내용들이 많다. ‘4터’(일터, 삶터, 쉼터, 배움터)가 마련된 환경을 조성해야 지방을 빠져나가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먹거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물때(일터), 어초(삶터)와 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물(쉼터), 어미로부터 생존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공간(배움터)이 조성되어 있다.

1990년대 초 인터넷 상용화는 온갖 제품과 기술 정보들을 온라인에 쏟아지게 하였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 제조 기업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유사 제품들을 마구 베껴 내는 상황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에 끼어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글로벌 가격 경쟁력 확보는 어렵게 되었다. 그 결과, 성장 엔진은 둔화되고, 고용 창출력은 갈수록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5년에 벤처 및 창업 기업에 5년간 소득세와 법인세를 절반으로 감면하는 정책을 단행한 바 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수도권에는 2배 이상의 기업 숫자가 증가했지만, 부산을 포함한 지방에는 기업 수 증가는 1.3배 미만으로 미미했다. 결국, 수도권에는 기업 생존 핵심 요인인 물류비와 인건비 절감에 유리한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었으며, 기업들로 하여금 쉽게 둥지를 트게 하는 ‘일터’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지방의 인재들은 일터를 찾아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지방대학의 정해진 암울한 미래가 더 확고하게 되는 장면이 되었다. 이후, 2020년을 전후하여 지방에 살아남은 기업들은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하나둘씩 본사를 수도권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또다시 인재를 수도권으로 유인하게 하는 가속 페달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편, 수도권 자치단체는 기업과 인재의 수도권 유입에 따라 증가된 세입 자금으로 ‘쉼터’와 ‘삶터’, 그리고 ‘배움터’ 조성 사업에 여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젊은 인재들을 수도권으로 끌어모으기에는 충분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소득세·법인세 절반 감면 정책처럼 정부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때로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더 가속시키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다.

중앙정부로서는 국가 전체의 경쟁을 챙겨야 하고 지방과의 격차도 줄여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접할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의 정해진 미래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시나리오로 작성되고 있다. 지방정부와 지방대학, 그리고 지방 기업이 한 몸통이 되어 절박함과 시급함으로 ‘4터’ 마련을 위한 머리를 맞대어야만 정해진 미래를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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