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사건 1시간 뒤 사망한 70대… 50대 피고인은 집행유예, 왜?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공원서 다투다가 얼굴 부위 2차례 폭행
몸싸움 뒤 병원 이송됐으나 급성심근경색 사망

법원 “폭행으로 사망까지 예측하기는 어려워”
“부검서 외상 흔적 발견될 정도 폭행은 아냐”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DB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DB

폭행을 당한 70대 남성이 1시간 뒤 급성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법원은 주먹을 휘두른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폭행과 사망 간의 인과관계가 없지 않지만, 폭행으로 피해자의 급성심근경색까지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는 1일 폭행치사로 기소된 A(57)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폭행치사로 A 씨를 재판에 넘겼으나, 법원은 폭행치사가 아닌 폭행죄만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21년 12월 30일 오전 10시 40분 부산 영도구의 한 공원 광장에서 딸,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시민을 본 A 씨는 ‘자전거 금지 구역에서 자전거를 탄다’고 항의했다.

이에 옆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던 B(76) 씨가 “여기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직원들도 가만히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맞섰다. A 씨는 “아저씨는 빠지시고요”라고 말하면서 양손으로 B 씨의 멱살을 잡고 밀쳤다.

바닥에 넘어진 B 씨가 주먹으로 A 씨의 얼굴을 때리자, A 씨도 주먹으로 B 씨를 때려 바닥에 넘어뜨린 뒤 왼팔로 목을 감싸고 주먹으로 B 씨의 얼굴 부위를 2차례 폭행했다.

B 씨는 A 씨와 5분가량 몸싸움을 한 뒤 의식을 잃고 잔디밭에 쓰러졌다.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다툼이 끝난 지 70여 분 만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B 씨가 죽음에 이르렀지만, 재판부는 A 씨에게 폭행치사가 아닌 폭행죄만을 인정했다. 폭행치사가 성립하려면 ‘상당한 인과관계’와 ‘예견가능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예견가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폭행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에 영향을 줬고, 이는 사망의 유일하거나 직접적인 원인이 돼야 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부검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는 심한 동맥경화 등을 앓고 있었으나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육체적, 정신적 자극이 있어도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인도 예견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A 씨가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폭행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B 씨도 잠시나마 정상적인 신체활동을 하기도 했다. 부검에서도 폭행에 의한 외상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해 피해자가 급성심근경색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폭행죄에 대해 재판부는 “A 씨가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고령인 피해자에게 가한 폭행의 내용이 상당히 좋지 못하고, 그 강도 또한 상당했다는 점에서 죄책이 무겁다”며 “다만 서로 주먹질을 하며 몸싸움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발생한 범행으로 일부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