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93. 달빛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토끼 자세’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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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자세는 정수리를 자극해 뇌세포에 혈액과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도록 돕는다. 두피를 자극해 탈모 예방에도 효과적이며 목덜미나 어깨 결림에도 좋다. 시연 박미희 토끼 자세는 정수리를 자극해 뇌세포에 혈액과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도록 돕는다. 두피를 자극해 탈모 예방에도 효과적이며 목덜미나 어깨 결림에도 좋다. 시연 박미희

오늘 밤하늘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계수나무 아래 옥토끼가 방아 찧는 모습을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눈 크게 뜨고 찾아보고 싶다.

“오작교 빌려 월궁으로 들어가서/ 옥도끼로 계수나무 다듬고 싶지만/ 저 높은 계수나무 그 누가 꺾으며/ 항아(姮娥)가 감춘 약 훔치기 어려우리” 조선시대 문장가 이규보(1168~1241)는 토끼와 달의 형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보름의 둥근달은 모든 영화와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이는 나도향(1902~1926)의 단편소설 ‘그믐달’ 중의 한 귀절이다.

정목일은 수필 ‘달빛 고요’에서 “달밤의 고요는 냉수 한 사발처럼 그저 담담한 고요가 아니었다. 몇 광년 쌓인 우주의 고요이자 달의 영혼이 비춰진 숨결이었다. 하늘이 가장 낮아진 밤이었다. 달빛이 젖어 들면 꿈속 같았다. 하늘과 땅, 밤과 낮이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그리운 이들의 눈동자가 보이고 머리카락이 닿아 있는 듯했다. 달빛보다 더 밝고 깊은 고요가 어디 있으랴 누가 달빛의 끝까지 고요를 풀어놓았을까. 고요의 끝까지 달빛이 밀려간 것일까”라고 말한다.

“이른 새벽에 홀로 앉아 향(香)을 사르고 산창(山窓)에 스며드는 달빛을 볼 줄 아는 이라면 굳이 불경을 아니 배워도 좋다.”(해안스님)

이처럼 고구려 벽화부터 신라 수막새, 고려 청동거울, 고려와 조선시대 한시, 민화, 구비 문학, 현대 소설에 이르기까지 시인, 묵객이며 예술가들은 달과 달에 토끼가 살고 있는 모습들을 다양하게 표현했는데, 이는 토끼를 달의 정령 또는 달 그 자체로 여겼기 때문이다.

토끼는 이처럼 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달을 토월(兎月), 토백(兎魄)이라고 하고 달의 그림자를 토영(兎影)이라고 했다. 또한 8월 보름에 중국인들이 먹는 월병(月餠)도 보름달을 먹는 행위라 생각했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토끼처럼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에서 아무 근심 없이 살 수 있는 이상 세계를 꿈꾸어 왔다. 토끼는 우리의 가슴 속에 장수의 상징이며, 달의 정령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토끼는 원래 인도의 고대 범어(梵語)에서 달의 다른 명칭으로 쓰였다. ‘뛰어오르는 동작’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토끼를 달이나 계수나무와 연관시켜 생각하게 된 것도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이된 것이다.

칠흑 같은 밤 하늘에 둥실 떠오른 보름달은 인류에게 상상력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달의 그림자를 오래전부터 토끼와 연결지었다는 것은 토끼가 일찍이 우리에게 상상의 근원이 되는 신비로운 영물이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인류가 달의 반점을 보고 토끼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상상해 내었다는 그 자체가 크나큰 인지 혁명의 순간일 것이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얼룩 같은 달의 그림자에서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 내는 능력은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진 높은 단계의 인지 능력 때문이리라.

토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꾀돌이의 모습이다. 설화 등에서 토끼는 주로 선한 동물이지만, 민첩하고 영리한 동물로 그려지고 있다. 비록 현실에서는 부드러운 털에 앙증맞은 작은 체구를 가진 초식동물로서 호랑이·사자 등의 강한 육식동물을 피해 다니는 약자이지만, 위기 시에는 특유의 지혜로움과 꾀를 발휘해 위험을 벗어나거나 강자를 골탕 먹이기도 한다. 특히 별주부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실제로 토끼의 지능은 호랑이나 거북보다 높다고 한다.

조상들은 한낮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에는 삼족오(三足烏)가 살고 있으며, 밤길을 밝혀 주는 역할을 하는 달나라에는 천년을 산다는 옥토끼가 불사의 영약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상서로운 동물로 취급했다. 은은한 달빛을 품고 있는 달 속 토끼의 모습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로 여겨져 이상향을 꿈꾸게도 했다.

달과 여성의 관련성은 여성의 달거리를 달이 주관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토끼는 가임(可妊)기간이 짧은 데다 중복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산(多産)을 상징하게 됐다. 따라서 달은 토끼가 사는 곳인 월궁(月宮)이자 여성을 나타냈다. 훤한 보름달을 우러르며 이런 토끼의 다산 기운을 받아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조선시대 왕비의 침소였던 창덕궁 대조전 굴뚝과 경복궁 교태전 석련지 등에는 토끼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자자손손 왕실의 대가 이어지기를 서원했던 흔적이다.

순천 선암사 원통전에도 토끼가 새겨져 있는데,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 찧는 토끼의 모습은 무병장수와 장생불사를 상징한다.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돼 있을 때, 광통루(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1444년(세종26년)에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의 신 항아(姮娥)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에서 이름을 따 광한루라 부르게 됐고,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전의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난 곳이다.

모든 걸 낱낱이 명명백백하게 훤히 들춰내는 태양 빛보다, 조금은 감추고 싶은 것들을 어슴푸레 숨겨 주는 은은한 달빛에게 오히려 더 정감이 가는 것은 왜일까? 정서적 몰입감은 달빛이 단연 우세하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달빛이 ‘자연 감성조명’ 그 자체이기 때문일까.

“달은 오랜 세월 우리 호모사피엔스에게 정서적 공감을 일궈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줬다. 하지만 전기를 이용한 인공 조명으로 인해 인류는 알게 모르게 혹독한 정서적 학대를 강요받아야 했다. 주야가 바뀐 삶으로 얼룩진 생활의 리듬뿐만 아니라 전깃불은 정서적으로 달과 달빛과 달에서 묻어나는 수많은 서정적인 시적 감성을 한꺼번에 소실시켜 버렸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달나라의 계수나무가 뽑히고, 토끼도 쫓겨나 버렸다. 잃어버린 전설보다 더 쓸쓸한 것은 어둠을 몰아낸 전깃불이 우리를 더 살벌한 생존 경쟁의 현장으로 몰아 넣는다는 데 있다,”(성원스님) 이는 계수나무 아래 옥도끼로 방아 찧는 모습의 달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인류의 달 탐사 역사의 시작은 옛 소련이다. 1959년 ‘루나2’라는 비행선을 달에 충돌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달 뒷면 사진도 찍고 최초로 달에 착륙도 했다. 하지만 사람을 달에 안착시킨 건 미국이 유일하다.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날아간 닐 암스트롱과 버즈 골드린이 최초로 달에 내렸다. 한국은 2022년 594만km를 비행한 다누리호를 달 궤도에 안착시켜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의 반열에 올랐다. 2030년대에는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기실 과학은 신화를 완전히 걷어내기는커녕 경이로움을 더하고 있다고 했다. 막막한 우주를 알면 알수록 우연과 기적의 경이를 마주하는 법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달 탐험을 하고서 외려 인류에게 새로운 영적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지구에서 본 아름다운 달처럼 우주에서 본 지구가 달 이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달나라 탐사를 50여 년 만에 재개했다. 우주의 알파, 생명의 신비에 더 다가가기 위해서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대단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존재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모든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다. 토끼의 달빛 신화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최학림)

요가 철학에서 달은 여성적 원리로 비유된다. ‘하타요가’란 말도 ‘해와 달 요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흔히 ‘음양요가’라고 한다. 그러나 힌두신화에서는 좀 다르다. 달의 신 찬드라(Chandra)는 남성으로 묘사되며 무려 27명의 부인을 거느린다. 다크샤의 27명의 딸들이 찬드라와 부부지간을 맺은 것이다. 그중 로히니라는 부인을 특히 애지중지 여겼다. 이에 나머지 스물 여섯 명의 부인들이 질투심에 불타 아버지 다크샤에게 이런 일을 고한다. 다크샤는 찬드라에 벌을 내려 중병에 걸리게 한다.

찬드라는 식물들의 번식을 주관하고 있었는데, 찬드라가 병이 나자 식물들이 시들시들 말라가며 성장을 멈추고 죽어갔다. 이런 찬드라 역시 시바신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이를 가엾게 여긴 시바는 찬드라를 자기 머리 위에 앉혀 휴식을 취하게 해 생기를 얻게 했다.

건강을 찾은 찬드라는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27명 부인들 모두를 골고루 사랑하게 됐고 공평하게 대했다. 그러나 로히니를 찾는 날에는 유독 달은 커졌고, 헤어질 때는 달은 작아지게 됐다. 헤어질 때가 되면 찬드라도 점점 여위어져 그믐달이 됐다. 그러나 28일째는 시바의 머리 위에서 다시 휴식을 취하며 기운을 얻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마치 우리 인생사의 흥망성쇠처럼 차고 기움을 되풀이하면서 달은 28일 주기로 변화를 되풀이하게 됐다는 신화다.(클레망틴 에르피쿰의 글 각색)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설화에서도 토끼가 달과 연결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숲속에서 먹을 것을 찾자 수달은 물고기를 바쳤고 원숭이는 과일을 바쳤다.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토끼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게 된다. 이에 토끼에게 감명받은 스님은 토끼를 달에 보내 살게 했다는 얘기가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자타카(Jataka) 본생경(本生經)’에 실려 있다. 이 설화의 영향으로 달 속에 토끼가 산다는 발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불교 문화가 전래된 이후 축조된 삼국시대 고분에 달 속 계수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떡방아 찧는 모습이 나오는 연유이다.

민화에서 토끼는 가정의 화목과 부부애, 그리고 풍요와 번영을 상징했다. 그러나 지혜롭고 영리하다는 토끼도 이따금 제 꾀에 넘어가는 우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해 익살스러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교만함을 경계하고 있다.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다’는 ‘태이불교(泰而不驕)’란 사자성어가 여기에 해당될 듯하다.

“소퇴도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에 간이 없고 보면은 불쌍한 토명만 끊사오니 누굴 보고 달라 허며 어찌 다시 구허리까? 당장에 배를 따서 보옵소서!” 이렇듯 판소리 수궁가에서 토끼가 간을 탐하는 용왕을 속이는 대목에서는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범 내려 온다’라는 대목도 별주부가 ‘토 생원’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발음이 새어 ‘호 생원’이라 부른 데서 생긴 소동이라고 국악 전문가는 말한다.

박범신의 소설 ‘토끼와 잠수함’에서는 “옛날 잠수함엔 토끼를 태웠답니다. 토끼의 호흡이 정상에서 벗어날 때부터 여섯 시간을 최후의 시간으로 삼았지요. 그 후엔 모두 질식해 죽게 되는 거요”라는 토끼가 등장하는 구절이 있다.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 보이의 로고에 토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토끼는 발정기 없이 1년 내내 교미할 수 있고, 뒷다리가 강하기 때문에 체구에 비해 격렬한 짝짓기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수컷 토끼는 하루에 수십 차례의 짝짓기가 가능하다 한다. 비록 수초 만에 끝나는 짝짓기이지만….

성어와 고사에도 토끼가 적잖게 등장한다. 우선 날쌘 토끼가 죽으면 그를 잡던 사냥개는 곧 솥에 삶긴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있고, 우연히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죽은 토끼 맛을 보고는 늘 그곳에서 다른 공짜 토끼를 기다린다는 ‘수주대토(守株待兎)’도 있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3개 파서 언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응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도 잘 알려져 있다. 신라 김춘추가 이 같은 설화를 듣고, 같은 계략으로 고구려에서 탈출했다는 일화가 삼국사기에 실려 전한다.

요즘 중국인들은 ‘토끼는 제 굴 주변의 풀은 뜯지 않는다’는 속언을 잘 쓴다. 제 살 깎아 먹기를 경계하는 말이다. ‘토끼 같은 자식’ ‘놀란 토끼 눈’ 등 토끼의 생김새와 관련된 우리말에서도 한국인들의 토끼에 대한 친숙함이 잘 드러난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 같은 속담도 그렇다.

한반도에 널리 서식하는 우리 고유종 멧토끼(Lepus Coreana)는 콧등이 없고, 이마에는 하얗고 작은 반점이 있어 다른 토끼와 구별된다. 멧토끼의 ‘멧’은 산을 뜻하는 ‘뫼’의 사투리다.

달리는 속도도 빨라 산속에서도 시속 80km로 달릴 수 있다. 도망간다는 말의 속어인 ‘토낀다’는 이렇게 재빨리 도망가는 토끼의 습성에서 파생된 말이다.

토끼 하면 기다란 귀와 튼튼한 발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런 익숙한 토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지닌 ‘우는토끼(pika)’도 있다. 아담한 몸짓과 둥그스름한 귀, 짧은 발 때문에 쥐나 햄스터, 기니피그와 비슷해 보이지만 토끼의 한 종류다.

토끼는 그동안 과학기술 연구와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동물 중 하나다. 유순한 성격과 저렴한 유지 관리 비용, 뛰어난 번식력으로 쥐 다음으로 가장 흔한 실험실 동물로 쓰인다. 기초의학·생화학 연구, 화장품 독성 테스트, 항체 생산 등에 도움을 주고 있다.

토끼는 그 자체로 귀중한 동물이다.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잡초를 뜯어먹으며 여러 종류의 식물이 자랄 기회를 준다. 또 이동하며 씨앗을 여러 군데 퍼뜨린다. 그러기에 동물학자들은 토끼를 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파수꾼이라 일컫는다.



경남 사천 비토섬에 있는 별주부전 조각상. 경남 사천 비토섬에 있는 별주부전 조각상.


경남 사천 비토섬에 있는 별주부전 조각상. 경남 사천 비토섬에 있는 별주부전 조각상.

설화를 바탕으로 한 지명 중에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경남 사천에 소속된 서포면 비토리의 섬 이름 ‘비토섬’은 토끼가 용궁에서 거북이를 타고 육지로 나오던 중 바다에 비친 섬 월등도(月登島)의 그림자를 육지로 착각해 거북이 등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고 해 붙여진 지명이다. 비토섬의 별주부전은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이야기와 결말이 약간 다르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굴동 포구에 이르면 약 50m 떨어진 곳에 표류하듯 떠 있는 작은 섬이 보인다. 그 섬이 ‘토끼섬’으로 한여름 하얀 문주란 꽃이 온 섬을 뒤덮을 때 그 모양이 토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문주란 자생지다.

토끼는 소설·만화 등의 작품 세계에서도 인기가 있고 친근한 소재다. “흰 토끼를 따라 가시오(Follow the white rabbit)”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를 진실의 세계로 이끈 대사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앨리스는 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들어가면서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마주하게 된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 각색돼 큰 사랑을 받았다. “미지의 세계는 위험이 도사리지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기회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앨리스는 말한다. 불확실성을 감내하면서도 두 주먹 불끈 쥐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큰 격려가 되는 말이다.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토끼 캐릭터는 단편 애니메이션 '루나 툰'에 등장하는 사고뭉치 벅스 버니(Bugs Bunny)겠지만, '주토피아'의 주디는 바른 이미지 면에선 최고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주디는 평화의 의미를 실천하고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며, 그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불굴의 캐릭터다. '주토피아'는 올바른 세상에 대한 영화다.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동물들이 공존하는 주토피아 같은 평화로운 세상을 떠올려 본다.

인터넷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엽기 토끼 '마시마로'는 이제 오프라인에서도 낯설지 않은 인기 캐릭터다. 마시멜로의 어린아이식 발음이라는 엽기 토끼 마시마로는 매번 처한 문제를 굉장히 엉뚱하고 괴팍하게 풀어 가면서도 현대인의 마음 속내에 후련한 대리만족과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어도 토끼의 귀여운 이미지 속에 가려진 엉뚱하고 황당한 면을 국산 토끼 마시마로가 잘 대변해 준다는 말이다.

또 만화 속에 등장하는 '센타로'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는 '당근 있어요?'란 제목으로 알려졌던 일본 만화 '센타로의 일기'는 어느 만화작가가 우연히 기르게 된 애완 토끼를 다룬 이야기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를 꼽으라면 다음 세 작품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첫 번째 작품은 북부 유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렸던 독일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수채화 ‘야생 토끼’(1502년)이다. 언스트 헨스 곰브리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끈기와 인내로 충실하게 표현해 내고자 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손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실성의 극치까지 이르려는 장인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음으로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도 이 같은 맥락 아래에서 오래전부터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토끼의 의미를 재치 있게 드러낸다. 백남준은 1996년에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토끼를 배치한 미디어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여기서 토끼는 마치 수도승처럼 텔레비전 모니터에 잡힌 보름달을 묵묵히 감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 ‘토끼’(1986년)이다. 이 작품은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10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이로써 이 작품은 예술가의 붓 터치, 예술가의 사상 따위는 필요 없는, ‘비싸기로 유명한’ 것이 가장 주목받는 시대의 상징이 됐다’(양정무의 그림 세상 참조)

현대 미술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토끼가 있다. 독일 태생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1921~1986)가 1965년에 행위 예술로 선보였던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의 사진이다.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한 느낌을 준다.

범어로 사샹크(shashank)는 토끼를 의미하는 샤쉬(shash)와 포개기를 의미하는 앙크(ank)의 두 단어에서 파생됐다. 사샹크는 달을 의미한다. 그래서 ‘토끼 자세’를 ‘사샹카 아사나’라고 칭한다. 인도 사람들은 보름달이 뜰 때 달에 겹쳐진 토끼의 모양을 닮은 부분으로 봤다. 달은 부드럽고 평온한 파동을 내뿜어 평화와 고요함, 신선함을 상징한다. 사샹카 아사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자세는 먼저 무릎을 꿇고 앉아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몸을 앞으로 굽혀 정수리가 바닥에 수직으로 닿게 한다. 양 손은 등 뒤에서 깍지를 끼고 머리 쪽으로 천천히 잡아당긴다. “물 한 방울이라도 사라지면 우주는 목말라 한다”고 시인은 읊고 있다. 이는 우주가 하나로 완전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 한 방울도 우주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사람도 우주의 한 부분이다. 사람 몸도 완전하게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러기에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이것이 몸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이치이다. 이를 가리켜 인체생리학에서는 홀리스틱 시스템(holistics system)이라 일컫는다. 화엄(華嚴) 사상의 핵심인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다. 즉 하나는 곧 여럿일 수 있고, 여럿은 곧 하나 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일(一)과 다(多)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이치이다. 동양 의학적 관점이다.

이 아사나는 정수리(사하스라라 차크라)를 자극해 뇌세포에 혈액과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는 효과를 낳는다.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고 화(火)나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두피를 자극해 탈모 예방에도 효과적이며 목덜미나 어깨 결림에도 좋다. 얼굴 부기도 빼 주고 목선을 아름답게 해 얼굴이 갸름하게 보이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통이나 목디스크가 심한 사람은 주의를 요한다. 이 아사나는 평소 생각이 많거나 머리를 쓸 일이 많은 사람, 특히 수험생들에게 유효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토끼는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길어서 오르막길을 잘 올라간다. 평온한 시기보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더 진가를 발휘한다는 말이다. 통상 내리막길에서 빠르게 이동하기는 쉽지만, 오르막길을 신나고 활기차게 오르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사는 게 팍팍하고 인생 항로에서 힘에 벅찬 상황에 봉착했을 때는, ‘토끼 자세’를 취하며 낯선 용궁에 들어가 간을 빼앗길 상황에 놓였는데도 침착하고 유머스러스하게 위기를 극복했던 영특한 토끼의 지혜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작고 유약해 보이지만 특유의 재치와 지혜, 굳건한 배짱과 강단을 발휘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생존하는 토끼의 특성을 닮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토끼 부부가 떡방아를 찧으며 천년만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보름달의 부드럽고 은은한 파동처럼 ‘토끼 자세’를 통해 우리들의 몸과 마음도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옴 샨티 샨티!”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부산 온천장 위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부산 온천장 위치)

통영 운형산방에 있는 토끼 삼발이. 통영 운형산방에 있는 토끼 삼발이.

경남 고성 쌍바위 산토끼 문양 수석(1987). 경남 고성 쌍바위 산토끼 문양 수석(1987).

[토끼 자세/최진태]

수많은 시인 묵객 예술가들 노래하네/옥토끼가 방아 찧는 꿈길 속의 달나라를/그대를 달님의 정령 그 자체로 여겼구려

달 그림자 얼룩 보고 신화로 탄생시켜/달과 토끼 연관지어 예술로 승화시킨/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지능력 경탄하오

달과 여성 관련성을 달거리와 연관짓고/달나라는 토끼의 거처 월궁(月宮)이라 부른다지/다산(多産) 상징 그대의 모습 인구 증가 귀감되오

달님은 정서적 공감 일궈 주는 매개체라/인공조명 도래한 후 혹독한 정서적 학대/서정적 시적 감성을 한순간에 매몰시켜

인간은 모든 것을 안다고도 말하지만/기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도 되죠/토끼의 달빛 신화를 재조명할 이유라네

그대는 기초의학 생화학 연구 항체 생산/과학 기술 연구 발전에 크게도 기여했네/생태계 환경 유지에 단연 으뜸 파수꾼

무릎을 꿇고 앉아 엉덩이를 들어 올려/정수리 바닥 대고 깍지 낀 양팔일랑/머리 쪽 최대한 당겨 뭉친 근육 푸소서

정수리 자극하니 수승화강(水昇火降) 절로 되네/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 줄어든다/특히나 수험생들께 권하노니 이 자세를

어려운 상황에선 토끼 지혜 떠올리며/내리막 길 오르막길 적절히 조절하여/팍팍한 인생 항로 강단 있게 헤쳐가세

은은한 달빛 파동 그 자체로 여여(如如)하오/옥토끼 놀고 있는 이상향을 그려본다/심신의 평화로움을 맛보소서 이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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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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