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MZ를 배우는 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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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적극적 동조냐 소극적 방어냐
MZ세대도 태도 따라 여러 갈래

비상식과 불합리에 당당한 저항
MZ 문화의 가치는 분명 존재

새로운 건 언젠가 기성문화 돼
결국 ‘변화하는 자세’가 중요


“요즘 MZ세대들은 이런 말 쓴다며?” 최근 이런 얘기 들을 기회가 많았다. 처음 몇 번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꽤 변죽 좋게 “아유, 그럼요” 하며 받아친다. 적극적인 동조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극적인 방어다. 나는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는 회색지대 MZ이기 때문이다. ‘제 생각은 좀 달라요’ 하며 MZ세대와 스스로를 분리하는 ‘요즘 애들’이 있는가 하면, ‘저는 MZ세대처럼 말하고 행동해요’라며 트렌드세터(유행 선구자)를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침묵함으로써 ‘MZ세대’ 이미지에 조용히 편승하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인터넷으로 MZ를 배우는 MZ가 되어 가고 있다.

자기 주관과 개성이 뚜렷한 세대. 아마도 요즘 온라인 세상에서 그리고 있는 MZ세대의 모습인 듯하다.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SNL’은 20대 사원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 내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노래를 들으며 일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되려 상사를 눈치 보게 만들고, 의례적으로 막내들이 해 온 행동들(수저 놓기, 물 떠오기, 자진해서 심부름하기)을 하지 않는다. 물론 과장이고, 속으로야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상황이다. 대놓고 과장된 캐릭터들이 등장해 불편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그게 웃기다. 불편하면서도 짜릿하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요즘 애들’에 편승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문제의식은 있는데 용기는 없는 마음을 콘텐츠가 대변해 준다.

사실 현실에서 미디어 속 MZ세대처럼 할 말 다하고, 남들 신경 안 쓰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을 실제로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어쩌면 남을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요즘 애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 속 MZ세대는 사실 실체가 없다. 어디를 가나 회자되는 MZ 밈(유행 콘텐츠)도, 사실 온라인 세상에 존재하는 모방 콘텐츠의 산물일 뿐이다. MZ세대의 이미지는 왜곡된 채로 일반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MZ 문화가 트렌드를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 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일종의 이익이 따라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MZ세대로서의 이미지가 먹힐 때 휴가를 쓰자”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 있다. 나에게 주어진 정당한 휴가인데도 상사 눈치를 보고 쓸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왕이면 MZ세대 문화가 유행처럼 퍼져 있을 때 휴가를 쓰자는, 웃기지만 다소 슬픈 이야기다.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눈치 보기’가 팽배한 경직된 사회 속에서 ‘눈치 없는 척’ 휴가를 쓰는 건 누군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노동자에게 새로운 문화는 ‘요즘 애들처럼 한 번 해 보자’ 하는 용기를 줄 수 있다. 조직도 중요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도하게 눈치를 보며 쉬지 못하는 상황은 피하자는 것이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유머는 불만을 제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으로는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화가들은 우리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어색한 측면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이 지점이야말로, 현대인들이 MZ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는 이유가 아닐까. 꼰대 같은 상사를, 책임감 없는 누군가를, 배려 없는 타인을 대신 일갈하고 자신의 행동도 돌아보게 만드는 것. 이것이 유머 콘텐츠의 순기능이다.

사실 MZ세대 문화는 전 세대가 즐기고 향유할 만한 문화다. 우리는 모두 답답한 일상에서 ‘사이다’ 같은 일침을, 비상식적인 규칙에 대한 반기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당당한 태도를 꿈꾼다. 지금의 MZ와 멀어 보이는 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언젠가는 청년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본 X세대는 지금의 MZ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그 당시 새로웠던 문화가 지금의 기성문화가 된 것뿐이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와 충돌하고 화합하면서 변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다. MZ도 MZ 문화를 배우는 이 상황에, 다른 세대라고 배우지 못할 건 없다.

결국 중요한 건 ‘MZ세대의 문화’가 아니라 ‘변화하는 자세’다. 청년으로서 지금은 MZ 문화가 편하고 즐겁지만, 앞으로 나이가 들었을 때 새로운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문화가 내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세대를 비판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것들은 계속 등장하고 세대는 변한다. 비록 실체 없는 세대론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세대의 출현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 변화에 민감한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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