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이 녹아도 해수면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최종수
얼음 때 커진 부피, 녹으면서 감소
육지 위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 상승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
‘만물은 물이다’ 주장 커다란 파장
신화·초자연적인 존재에서 탈피
이성·과학 통해 세상 원리 설명
유럽 겨울 축구리그 난류로 가능
볼리비아, 전쟁서 패해 내륙국가 아픔
물을 통해 과학·문화·역사·일상 통찰
서양철학에서 최초로 물을 언급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라고 추켜세운 인물이다.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것은 “만물은 물이다”라고 주장한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 주장은 고대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당시 고대 사람들이 생각한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신화였다. 사람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탈레스의 주장을 시작으로 이성과 과학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며 우주의 근원과 자연의 이치를 물로 설명하고자 했다.
탈레스가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이 물이라고 주장한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생명체가 물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탈레스는 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천으로 흘러가는 것은 물론이고 파도가 치는 것도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도 모두 물이 스스로 움직인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이 자연 상태에서 고체, 액체, 기체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라는 사실도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고체, 액체, 기체는 물이 변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액체는 물이 변형된 것이고, 고체는 얼음이 변형된 것이며, 기체는 수증기가 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믿었다.
탈레스의 이 생각을 출발점으로 철학자들은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원리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적인 존재 또는 과학적인 물질일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탈레스가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며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에 비견될 만큼 가히 혁명적이었다.
서양철학에서 물은 탐구의 대상이었지만, 동양철학에서 물은 비유의 대상이었다. 도가의 대표적인 경전인 <도덕경>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나온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물은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지만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는 ‘물’이란 키워드 하나로 과학, 문화, 역사, 일상을 꿰뚫는 ‘물의 인문학’을 다룬 책이다. 과학의 영역에 고여 있던 물에 새로운 물길을 내어 물이 다양한 영역으로 스며들게 했다. 지난 30년간 물에 대해 연구해 온 ‘물박사’인 저자는 물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 생활에 스며든 물이 어떻게 문화를 창조했는지, 물 하나로 역사가 어떻게 뒤흔들렸는지, 그리고 왜 일상에서 물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지 등 총 4부로 풀어냈다.
저자는 물을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완벽한 재료’이자 ‘지구 역사를 온전히 지켜본 물질이자 지구 생명체에 절대적인 존재’로 칭한다. 물은 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물질이다. 물이 부족하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은 곧 생명’인 셈이다.
물의 과학과 관련해 ‘빙산이 녹아도 해수면은 올라가지 않는다’라는 부분이 눈에 쏙 들어왔다.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이 녹으면 수면의 높이는 어떻게 될까? 예상과 달리 극지방의 빙산이 녹아도 바닷물 수위는 높아지지 않는다. 얼음으로 존재할 때 커졌던 부피는 녹아서 물이 되면 다시 줄어들기 때문에 빙산이 바다로 녹아들어도 해수면 높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마치 컵에 있는 얼음이 다 녹아도 컵에 담긴 물의 높이는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해수면 상승은 녹아내리는 빙산 탓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해수면 상승을 걱정하는 얼음은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이 아니라 땅 위를 덮고 있는 빙하이다. 극지방에 있는 얼음은 형태에 따라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은 ‘빙산’, 육지를 덮고 있는 얼음은 ‘빙하’, 그린란드나 남극 대륙과 같이 넓은 면적을 덮고 있는 빙하는 ‘빙상’이라고 한다. 빙산은 녹아도 해수면이 상승하지 않지만, 육지를 덮고 있는 빙하나 빙상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한다. 전문가들은 그린란드나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으면 지구의 해수면이 60m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 문명의 발달을 촉진했다. 토머스 뉴커먼이 1705년 최초로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제임스 와트는 기존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개량해 현재와 같은 모양의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기본적인 원리는 물을 끓여 발생하는 수증기의 압력을 이용해 장치를 회전시키는 방식이었다. 끓는 물이 만들어준 1차 산업혁명은 인류 문명에 혁명을 가져왔고 프랑스의 발명가 제노베 그램미가 인류 최초로 발전기를 만들면서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유럽 축구 리그가 겨울에도 열리는 이유가 멕시코만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북대서양 난류 영향이라는 점, 한때 바다를 가졌지만 19세기 이웃 나라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해 내륙 국가가 된 볼리비아의 아픈 역사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물을 따라가는 지적인 여정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책이다. 최종수 지음/웨일북/328쪽/1만 8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