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도시에 대한 동물적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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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동쪽~서쪽 이동하며 본 부산
영화 ‘쥬만지’ 속 코끼리 연상
깎인 구릉, 콘크리트로 덮인 골
고층건물 ‘앞마당’ 된 해변까지
고유성 잃은 천편일률 스카이라인
도시 사랑도 ‘참된 시민의 의무’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게오르그는 어느 날 제 몸이 거대한 벌레로 바뀌었음을 알아채고 비로소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방 밖의 식구들은 아무 관심이 없으니 철저하게 홀로이다.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모든 궁리와 방안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이며, 울이 되었던 타인과의 관계란 무척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된다.

‘엘리펀트 인 더 룸(elephant in the room)’. 코끼리가 방에 들어가는 엉뚱한 상상 또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거대한 코끼리가 좁은 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우선 둔한 걸음걸이로 인하여 방안의 가재도구들이 박살 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한 상상은 영화 쥬만지에서 한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마술 가방에서 나온 야생동물들이 집을 향하여 돌진하고, 관객들은 숨을 죽여야만 했다. 갇힌 코끼리의 답답함은 또 어떠할까?


코끼리를 방에 넣는 상상에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집과 방이란 사람들의 물건과 코끼리의 언발란스를. 그러한 생각이 코끼리를 다시 들과 숲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데에 미친다면 영화의 교훈은 성공이다. 반면, 좁은 방 안에서 점점 몸집이 커져 몇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방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할 것을 상상하는 게오르그의 실존적 허무는 어떠했을까? 방 안의 코끼리가 육체적 괴로움에 어쩔 줄 몰랐다면, 카프카의 게오르그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명절을 맞아 부모님 산소로 향하는 길. 부산의 동쪽 끝에서 서쪽으로 향하면서 문득 카프카의 벌레와 쥬만지의 코끼리를 생각하였다. 이 도시가 산을 등지고 바다를 안고 있기에 유유히 차 안에서 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다. 마치 방 안의 코끼리를 방 관찰하듯이.

장산, 백양산, 황령산이 아니더라도 영주동, 수정동 산복도로에만 올라도 수많은 구릉과 골로 연속된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나처럼 차를 타고 해안도로,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를 지나다 보면, 마치 연의 꼬리와 같이 길고 독특한 도시가 한눈에 든다. 사는 곳을 이처럼 직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도시 풍경은 시민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먼저 안목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지만 오랜 도시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도시계획만이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모여 도시가 이루어지듯 결국 시민들의 안목은 중요하다. 도시 사랑. 그것은 참된 시민의 의무이며 역할이다.

시민들이여! 질식할 정도로 꽉 차 버린 이 도시를 관찰해 보시라. 구릉과 골의 구분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구릉은 깎이고, 골은 모두 콘크리트로 덮였다. 천혜의 해변은 50~60층 건물의 앞마당에 불과하며, 육지의 끝마다 건물이 들어차 시민들은 길을 잃었다. 천편일률적으로 길기만 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특성을 잃고,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언덕과 코파카바나 해변이 겹쳐보곤 하던 나의 환상은 기억의 저편에 있다.

나는 산과 바다에서 이 도시를 바라볼 때마다 카프카의 벌레와 쥬만지의 코끼리를 발견하게 된다. 질식할 만큼 꽉 차버린 집들과 줄어드는 도시의 인구.

용적의 욕심에 건물은 도로에 큰 그늘을 만들고, 좁은 틈으로 건물 사이 바람은 드세어졌다. 사람들은 높은 집과 좁은 방에 갇혀 버렸고, 밖으로 나오면 길을 잃는다. 재개발 열풍이 도시의 질서와 사람의 삶을 흐트려 놓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하물며, 집이 늘어나자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떠나버리고, 욕망의 찌꺼기가 쌓인 곳에 점점 불빛이 사라지고 있으니 더 큰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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