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아직 갇혀 있어요”… 애끊는 슬픔 속 가족 기다리는 피난민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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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참사

산더미 잔해 생존자 수색 난항
집 붕괴에 수백 가구 탈출 못 해
혹한에 모닥불로 버티며 노숙
끝없는 부상자·의료용품 태부족
“지진 여파로 두 나라 경제 시련”

지난 6일(현지시간)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의 한 대피소에 피난민들이 모여있다. 이번 지진으로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의 사상자가 급증한 데 이어 일부 생존자는 영하의 날씨에 노숙해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AP연합뉴스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의 한 대피소에 피난민들이 모여있다. 이번 지진으로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의 사상자가 급증한 데 이어 일부 생존자는 영하의 날씨에 노숙해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AP연합뉴스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강진으로 도움이 절실한 지진 피해 지역 주민들의 비참한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생존자들은 건물 잔해 속에 갇힌 가족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일부 주민은 영하의 강추위 속에 차디찬 길바닥에서 노숙하는 등 이재민들의 ‘살아남은 고통’ 또한 극심한 상황이다.

AP통신 보도 등에 따르면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지난 6일(현지시간)에 이어 7일에도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구조대원들이 수색과 구조를 진행했다. 구조대원들은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건물의 콘크리트 더미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일부 생존자는 눈과 비가 내리는 날씨에 산을 이룬 잔해 위에서 도움을 호소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가족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 구조대원들이 콘크리트 슬래브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시신에 손을 뻗었다. 튀르키예의 아다나에서 붕괴된 건물 주변에 있던 한 주민은 “나의 손자는 태어난 지 겨우 1년 6개월 지났다. 제발 도와 달라. 가족들은 12층에 있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집을 잃은 수만 명의 이재민이 추위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야만 했다. 일부 지역의 기온은 밤새 거의 영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잔해 속에 갇히거나 집을 잃은 사람들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진원지에서 약 33km 떨어진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서는 사람들이 쇼핑몰, 경기장, 이슬람사원, 주민센터 등으로 대피했다. 목숨을 부지한 일부 생존자는 차디찬 길바닥에 내몰리기도 했다.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경우도 많고, 무너지는 집에서 겨우 피해 살아남은 이들은 아무런 대비 없이 노숙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거처를 잃은 주민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추위를 견디는 모습도 포착됐다.

튀르키예의 한 대학생은 캐나다 공영방송 CBC 인터뷰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20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조부모님은 여전히 아파트 폐허 속에 있다”며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둠 속에 버려졌지만,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시리아는 지난 12년간 내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상황에서 지진 발생 탓에 더 큰 불행을 떠안았다. 시리아 쪽의 지진 피해 지역은 정부가 통제하는 영토와 반군이 장악한 마지막 영토로 나뉜다. 반군의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은 성명에서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는 수백 가구가 잔해 속에 갇혀 있다고 전했다. 하얀 헬멧은 2013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구호단체로 시리아 내전 현장을 누비며 11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공로로 2016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지진 때도 시리아 최대 피해 지역인 북부 알레포시에서 응급 치료와 환자 이송을 포함한 긴급 구조 활동 전면에 나섰다. 하얀 헬멧은 정부 통제를 벗어난 반군 장악 지역에서 현지 피해 상황을 집계하며 사실상 대외 창구 역할도 맡았다.

해당 지역은 전쟁 탓에 다른 지역에서 피신한 400만 명의 난민들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군사 폭격으로 이미 부서진 건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진 피해도 클 수밖에 없었다. 지역 의료 센터마다 부상자들로 이미 포화 상태고, 밀려드는 부상자를 수용하기 위해 산부인과 등 일부 의료 시설을 비워야할 처지다. 정전으로 어두컴컴한 거리에는 골절 등 각종 부상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부목과 붕대 등 의료용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날 성명을 내고 강진의 영향을 받는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는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는 인구가 약 41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번 참사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경제적 시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10월 인플레이션이 전년 동월대비 85.51% 상승,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에도 기준금리를 오히려 낮춰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리라화 가치도 지난해 초 1달러당 13리라대에서 연말엔 달러당 18리라대로 급락했다. 10년 이상 내전으로 경제가 황폐화된 시리아는 더 참담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시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2020년 절반 이상 줄었고 2018년엔 저소득 국가로 재분류됐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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