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빼앗긴 문화재 왜 돌려받지 못하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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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때 도둑맞은 문화재 분명한데 소유권은 일본에?

원우 스님 등 충남 서산시 부석사 관계자들이 지난 1일 대전고등법원에서 ‘불상 소유권’ 항소심 관련, 심경과 향후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원우 스님 등 충남 서산시 부석사 관계자들이 지난 1일 대전고등법원에서 ‘불상 소유권’ 항소심 관련, 심경과 향후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약탈 문화재의 환수 문제와 관련해 지난 1일 대전에서 있었던 판결 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전고법은 이날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유체동산 인도 청구 항소심(2심)에서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내렸다. 여기서 유체동산은 하나의 불상이다. 부석사 측은 해당 불상이 원래 부석사에 있다가 고려시대에 일본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소유권을 인정한 셈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을 비롯한 각계의 반발이 거세다.


■“소유권은 일본에” 2심 판결

문제의 불상은 50.5cm 높이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 있던 것을 2012년 한국인 도굴꾼들이 훔쳐 부산항으로 가져왔다. 이들은 국내에서 이를 몰래 팔려고 하다가 경찰에 의해 이듬해 검거됐고, 불상은 회수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1951년 간논지는 이 불상의 복장(服藏)을 열어 부장품을 조사했는데, 그 안에 불상의 조성 경위를 밝힌 기록이 있었다. ‘1330년 2월 서주(현재 서산) 부석사에 관음상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부석사가 불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다. 부석사는 14세기 후반 왜구가 이를 약탈해 쓰시마로 가져간 것으로 본다. 실제로 〈고려사〉는 1352~1381년 다섯 차례 왜구가 서산 일대를 약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석사는 이를 근거로 2016년 국가를 상대로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재판부는 “왜구의 침입으로 비정상적 형태로 반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부석사 손을 들어 줬다. 사람들은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당연히 부석사로 돌아오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간논지가 거부했다. 쓰시마와 교류가 활발하던 조선 초기 불상을 양도받은 것으로 약탈이 아니며, 수백 년간 점유했으니 한·일 양국 민법의 점유취득시효 개념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거기에 더해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던 검찰이 “1330년 부석사와 현재 부석사가 이름은 같아도 같은 절이라는 근거가 없다”며 항소했다. 부석사는 뚜렷한 반박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2심 재판부는 간논지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부석사 측의 소유권을 확정해 주지 않았다.

파장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당 불상을 당장 반환하라고 우리 정부에 요구하고, 조계종 등 불교계는 “문화재 약탈에 면죄부를 준 몰역사적 판결”이라며 대법원 상고 의지를 천명했다.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수장고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 연합뉴스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수장고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 연합뉴스

■약탈 문화재 반환은 국제 추세

약탈 등 불법적으로 반출됐으면 돌려받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에선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약탈 행위를 증명하기도 어렵거니와 나라마다 복잡다단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약탈 문화재를 놓고 국제적인 갈등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나온 게 ‘유네스코 협약’이다. 1970년 체결된 이 협약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 도난 등 불법 반·출입된 문화재를 원래 자리로 반환하도록 규정했다. 140여 개국이 회원국이고, 한국도 1983년 가입했다.

그렇다면 이 협약에 근거해 부석사 불상 반환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실현성이 거의 없다. 이 협약의 내용은 1970년 이전으로는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 때는 물론 일제강점기 약탈 문화재의 반환 요구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네스코 협약은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이냐. 꼭 그렇지는 않다. 적어도 약탈 등 불법으로 취득한 문화재는 반드시 환수돼야 한다는 원칙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킨 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제사회의 윤리적 도의적 책임을 새롭게 환기시킨 것이다.

실제로 근래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분위기가 국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최대 미술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전시 중이던 고대 그리스·로마와 이집트의 도난 문화재 상당수를 이탈리아와 이집트 등에 반환하기로 지난해 9월 결정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 ‘호니먼 박물관’이 영국군이 1897년 나이지리아에서 약탈한 청동제 부조 작품 같은 문화재를 나이지리아 당국에 돌려 줬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최근 독일과 프랑스로부터도 유물을 돌려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을 두고 영국 정부와 그리스 정부 사이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일 정부, 협상 적극 나서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27개국에 23만 점 정도다. 그중 일본이 9만 5600여 점으로 전체의 41%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는 파악이 가능한 주요 박물관 등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이고, 개인 소장품 등 공개되지 않은 문화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문화재들은 대부분 불법적으로 약탈됐지만 약탈한 쪽에서 자발적으로 돌려주지 않는 이상 환수하기는 극히 어렵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부석사 불상도 대법원에 상고하는 것 이외에 다른 법적인 해결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상고해도 2심이 1심 판결을 뒤집고 사실상 일본 측의 손을 들어 준 만큼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기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요컨대 이를 환수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피해 회복을 위해 가해자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게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개인, 단체, 특히 국가 사이 협상이 중요하다.

결국은 정부의 외교력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866년 프랑스군에 약탈됐던 ‘외규장각 의궤’ 환수가 좋은 예다. 비록 온전한 소유권 이전이 아닌 장기 대여 형식이지만, 그래도 수십 년에 걸친 정부의 외교 노력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다.

부석사 불상에 대해서도, 대법원 소송과는 별도로, 우리 정부가 문화재 반환 논의 테이블에 일본 정부를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

마침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유달리 애착을 갖는 윤석열 정부다. 부석사 불상 환수 여부는 향후 국제적으로도 약탈 문화재 문제 해결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윤석열 정부는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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