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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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갈수록 태산이다. 2022년 2월 24일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며칠 뒤면 꼭 1년이 된다. 이전에 북쪽에서 남쪽까지 우크라이나를 자주 여행했다. 1679개에 이르는 동슬라브 도시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키이우. 가을이 되면 연분홍의 밤꽃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 도시는 지금쯤 얼마나 파괴되어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려도 종전회담 소식은 없고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두 나라 군인만 벌써 23만 명이 죽었다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이 야만적인 전쟁이 끝날 것인가. 마구잡이식 징집을 피하여 인근 국가를 떠도는 20여 만 명의 러시아 청년들은 또 언제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쩌면 베트남 전쟁(1960~1975)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 2001~2021)보다 더 꼬여 있지 않나 싶다.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무자헤딘, 미국-탈레반의 양자 싸움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해당사자가 많고 전쟁의 배경과 전개 양상 또한 훨씬 복잡하다.

배경·과정 복잡한 국제전 양상

서방 “동진 않겠다” 약속 어겨

러시아 침공 유발했다는 의혹

내년 대선 앞둔 美 공세 강화

전쟁 종식 전망 갈수록 암울

핵전쟁 등 확전 우려 제기돼

수십 년간 미국이 부추기고, 결국은 러시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고, 급기야 유럽, 이스라엘, 중국 등 전 세계가 직간접으로 얽혀 버린 국제전이 되어 버렸다. 우선 미국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때 “소련이 독일 통일에 협조해 주면 미국과 서방은 독일 동쪽으로는 한 발자국도 진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지난 30여 년간 동진 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동안 나토와 유럽연합은 여러 동유럽 국가들과 그루지아,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였고, 특히 2013년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 분열을 이용하여 그곳에 이른바 ‘곰 함정’(Bear trap)을 깊게 파고 거기로 러시아를 몰아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결국 러시아가 걸려들어 지금의 사태에 이르렀고, 러시아가 수세로 몰리자 미국과 서방은 대규모 공격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한다. 미국 ‘M1 에이브럼스’ 31대, 독일 ‘레오파드2’ 14대 등 총 321대의 서방 전차가 그것인데, 미국의 매파들은 이참에 러시아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여서 ‘곰 사냥’을 끝내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런 공세는 2024년 11월로 다가온 미국 차기 대선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이미 탄도미사일과 무인기를 동원하여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 학교, 병원, 시골 마을 가릴 것 없이 폭격을 해 댔고, ‘3월 춘계 대공세’를 예고해 놓은 상태다. 게다가 러시아의 핵무기 격납고에는 6000개의 핵탄두가 있다. 그렇잖아도 푸틴은 2012년 재집권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지고 연금개혁과 금융위기 타개에 실패하는 바람에 국내에서 인기가 전만 못하다. 2014년 3월 크림반도 병합 이후에 지지율은 잠시 80%대로 회복됐으나, 최근에는 다시 60%대로 급락하고 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정치 문화의 러시아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라는 건 영구집권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그런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그냥 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내부 사정은 어떤가. 거기에는 전쟁 종식과 평화회담의 희망이 있는가. 유감스럽지만 여의치 않다. 우크라이나 또한 우리처럼 진영 갈등이 심한 나라다. 동서 지역 갈등, 종교 갈등, 노선 갈등 등으로 나라가 좌우로 쪼개져 있고, 권력층의 부패와 외세 커넥션도 심하다. 여기에 원래부터 푸틴과 같은 편이었던 벨라루스의 루카센코가 노골적으로 러시아와 연합군을 형성하고, 중국과 북한이 러시아 군사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2월 6일 대지진으로 엄청난 인명이 희생된 튀르키예마저 중재국을 자처하며 은근슬쩍 러시아 편을 들고 나서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제전 성격은 갈수록 짙어지는 추세다.

약소국 지도자는 줄타기 외교를 잘해야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지킬 수 있다. 균형외교에 실패하여 자기 국민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에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에 대고 “장거리 미사일과 전투기까지 지원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렇게 평화는 멀고 전쟁 당사자들 모두가 자신의 권력욕이나 작은 국가이익 속에서 ‘불장난’에 여념이 없을 때, 죽어나는 건 힘없는 우크라이나 서민이고, 에너지 가격과 곡물가 폭등에 시달리는 제3세계 민중들이다. 확전과 핵전쟁, 제3 세계대전의 검은 악령이 지구촌을 어슬렁거리는 가운데 하루하루가 바늘방석 같다. 코로나가 주춤해지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코로나를 대신할 태세다. 21세기에 이게 무슨 짓인지, 인간의 탐욕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지구촌이 많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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