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불황과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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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고물가에 놀란 직장인들의 소비가 급격히 줄고 있다. 심지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대학원생들도 배나 오른 가스 가격에 놀라 소비를 줄이려 도시락을 챙겨 온다고 한다. 부산 도심인 광복동 거리의 1층 점포에 나붙은 ‘임대’ 표시가 최근의 불황을 잘 대변한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 아파트 가격의 하락은 물론 경제성장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산업용 전력 소비량은 두 달째 감소세다. 바야흐로 ‘불황의 시대’다.

도시 위기, 경기 불황과 함께 도래

실업·빈민 증가로 도심 활력 쇠퇴

기업 유치·도시 재생의 혁신 중요

불황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유효수요 부족 등으로 생산과 소비가 쇠퇴 또는 침체하는 상태를 말한다. 불황은 기업의 쇠퇴·도산으로 이어져 실업과 소비 위축을 유발한다. 이는 경기침체로 이어져 경제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로 이어진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초유의 경제 비상사태인 대공황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규모 토목 공사 등 ‘뉴딜 정책’으로 불렸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는 실마리를 만들었다. 이후 자본주의 경제에서 케인스식 정부 개입은 세계적인 불황에 대처하는 국가 역할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출현한 불황은 달랐다. 오일 쇼크 등 에너지 가격 급상승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단순한 케인스식 유효수요 창출로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상태에 빠진 것이다.

당시 가장 고통을 겪은 계층은 도시 서민이었다. 도시에선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노숙인 등 도시 빈민이 증가했다. 또 자치분권으로 나아가던 도시 단위에서는 재정 위기가 초래됐다. 도심 인구 축소, 기업 도산, 외곽 확산에 대한 과도한 인프라 투자와 관리비용 증가는 도시정부의 재정 위기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도시정부는 불황으로 인한 서민의 고통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복지·사회서비스 예산을 대폭 줄여야 함은 물론 파산하는 지자체도 생겼다.

이처럼 도시의 위기는 불황의 역사와 항상 함께한다. 중세 이전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도시 빈민은 근대 도시화 이후 불황의 시기와 함께 많이 늘어났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도시 내에는 수많은 실업자와 노숙인을 수용하는 판자촌인 후버빌(당시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딴 것)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형성된 뉴욕의 할렘가, 브롱크스 지역의 불황은 도시 빈민 지역을 더 확장했다.

이런 지역에서는 가난과 질병, 폭력 등 사회문제가 집중되었다. 해결책 제시는 도시정부의 책무였다. 임대아파트 제공, 공공 교통수단 도입, 도시빈민 지역의 복지 증대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불황이 나은 결과였다. 1970년대 불황과 지방재정 위기 이후엔 케인스식 국가의 역할은 축소됐다. 오히려 시장과 도시정부의 혁신이 요구되었다. 시장의 혁신은 기업 혁신으로 이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IT기업들이 출현한 것도 이 시기였다.

혁신 기업의 출현은 많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고, 이들 기업이 자리 잡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는 새로운 도시 르네상스를 맞았다. 동시에 도시정부는 도심으로 기업과 인구 유입을 위해 도심재생 사업을 시작하였다. 스마트성장 정책(smart growth)이라고도 하는 도시혁신 정책에는 지역경제, 주택·거리 개선 사업 외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주택, 대중교통 정책이 포함되었다.

최근 아파트 가격 하락이 내 집 마련의 좋은 시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마냥 기쁜 소식도 아니다. 가격 하락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통한 자연스러운 수급 조절이나 국가균형발전 등의 정책 효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불황은 실업, 노숙자 양산, 도시재정 위기 등 더 심각한 도시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고유가·고금리 속 불황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단순한 일자리 창출 등 기존 중앙정부의 역할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과 도시의 혁신으로 이어져야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도시정부에서는 도심으로의 혁신기업 유치와 도시재생 등을 통한 도시혁신의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자영업 중심 도시인 부산은 도심 내 1층 상가를 매입·관리하는 프랑스의 파리시 도시공사의 혁신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도한 외곽 확산 개발은 재고돼야 한다. 외곽 지역 도시개발에 따른 과도한 인프라 투자는 도시재정 위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서비스 축소로 귀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마음 편히 집에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점심은 주변 가게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그런 일상적 삶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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