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고 던지고 때리고… 악성 민원인에 “공무원 못 하겠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폭언·폭행 등 위법 행위 매년 늘어
MZ 공무원 주된 사직 이유 꼽혀
코로나 블루 영향… 경쟁률도 ‘뚝’
시 “민원 담당자 보호 조례 제정
영상촬영·녹음 웨어러블캠 도입”


매년 공무원을 상대로 한 폭언·폭행 등 악성 민원이 증가해 M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공무원이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젊은 공무원은 악성 민원을 당하고도 제대로 된 항변조차 못하는 공무원 사회에 실망해 상당수가 사직을 생각하는 실정이다.

지난 2일 오후 부산 북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40대 민원인 A 씨가 들어왔다. 상당히 취해 있던 A 씨는 20대 여성 공무원 B 씨 앞으로 다가가 ‘문화바우처’ 등 복지 지원 관련 상담을 요구했다. A 씨는 상담 내용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했고, 곧 온갖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직원이 욕설 자제를 요구하자, A 씨는 더 흥분해 난동을 피웠다. 결국 상담 창구 앞 가림막과 집기류 등을 B 씨에게 던졌고, 동료가 급히 몸을 던져 막았다. 이 과정에서 동료 공무원은 전치 2주 부상을 입었다. 현재 경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A 씨를 조사 중이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악성 민원은 오래된 문제이지만,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14일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폭언·폭행·성희롱 등 민원인의 위법 행위는 2018년 3만 4484건에서 2021년 5만 1883건으로 늘어났다. 부산의 경우 2021년 부산시와 16개 구·군청에서 발생한 악성 민원 피해는 3716건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07건과 비교해 2년 새 3배 이상 많아졌다.


그나마 통계에 잡힌 민원은 실제 악성민원의 일부라는 게 공무원들의 일관된 진술이다. 북구청의 한 공무원은 “이번 사건도 집기류를 던져 공무원이 다쳤기 때문에 일이 커졌지 욕설을 내뱉는 건 늘 있는 일이다”며 “담당자가 젊거나 여자라면 쉽게 생각해서 더 심한 말을 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급격한 악성 민원 증가는 코로나19 팬데믹과도 상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 침체와 외부 활동 제한 등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우울감이 증가해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 같은 공무원을 상대로 불만을 터뜨린다는 설명이다.

악성 민원의 피해자는 비교적 젊은 공무원이 많다. 일선 행정복지센터 민원 상담 업무의 경우 연차가 낮은 공무원이 많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가 14개 자치구에서 근무 중인 20~30대 공무원 29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대상자의 79.6%인 2302명은 공무원 사직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직 고려의 이유는 ‘낮은 임금’(42.1%), ‘악성 민원’(28.7%), ‘저녁과 주말 보장 안 됨’(14.7%) 등 순으로 악성 민원이 2위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 시험 경쟁률도 뚝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해 부산시 지방공무원 9급 일반행정직 임용시험 경쟁률은 9.3 대 1로 2017년 42.9 대 1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세다. 부산의 한 구청 관계자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작은 민원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금방 그만둔다는 비판도 있지만, 한편으론 악성 민원이 늘어나고 연금 등의 장점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직장을 떠난다고 젊은 공무원만을 탓하기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악성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올 상반기 민원 처리 담당자 보호 및 지원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또 영상촬영과 녹음이 가능한 착용식 카메라(웨어러블캠)를 도입하고 이에 맞는 운영 지침도 마련할 계획이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