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에 텅 빈 동네서 혼자 못 살겠더라"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①]
도란도란하우스 4인방
유두남 할머니 이야기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재개발로 수리도 몬 하고”
유두남(79) 할머니는 2021년 11월 아침 피투성이로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보니 맨바닥이었다. 침대보와 옷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냉골 집에서 고혈압이 도져 코피가 잦아진 탓이었다. “죽도 살도 못 하고 아프면 자식은 무슨 고생이고.”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단체생활이 싫어 거절했던 주민센터 직원의 도란도란하우스 입주 권유를 떠올렸다. 몸이 아프고 나면 혼자서는 못 살겠다 싶었다. 그날로 도란도란하우스 입주를 신청했다.
유 할머니가 살던 부산진구 초읍동 일대는 재개발 소문이 돌면서 한순간 흉흉해졌다. 집주인들은 기약 없는 재개발 희망에 낡은 집을 방치했다. 가진 것이 집 한 채뿐인 노인들은 재개발로 내야 할 자기부담금 액수를 듣고 화들짝 놀라서 집을 뺐다. 세입자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 전에 동네를 빠져나갔다. 사람 빠진 빈집은 쓰레기 투기장이 됐다. 말만 무성한 재개발 소문이 돈 지 10년 만에 동네에는 빈집이 늘어났고, 애초 낡은 집은 더 낡아졌다. 유 할머니는 그중 남은 세입자였다.
유 할머니 집을 방문했던 도란도란하우스 김경보 팀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냉기가 돌아서 깜짝 놀랐다. 온기가 도는 따뜻한 구석 아랫목에서만 종일 지내고 있었다. 욕실이 밖에 있어서 큰 대야에 데운 물을 받아 목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개발 소문이 돌면서 사실상 집은 방치됐고, 10년 동안 집주인이 수리를 안 했다고 한다.”
주거급여, 생계급여를 받고 지내는 유 할머니에게 집을 고를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재개발 이야기가 구체화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사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변화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도란도란하우스는 그런 유 할머니에게 온 행운이었다. 유 할머니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집에서 사니 생활이 달라졌다. 이대로만 같이 건강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다”고 웃음을 머금었다.
마을공동체 해체되며 노후에 닥친 뜻밖의 변수
□재개발로 쪼개진 원주민의 삶
부산의 정비사업은 활발하다. 부산시에 따르면 1월 기준 부산에서 추진 중인 정비사업은 총 248곳에 달한다. 재개발이 156곳으로 가장 많고, 재건축 89곳, 재정비촉진사업 3곳이다. 이 가운데 부산진구에서 추진 중인 재개발은 22곳으로 부산의 16개 구·군 가운데 가장 많다.
유두남 할머니가 살던 부산진구 초읍동도 그중 한 곳이다. 재개발 확정이 되지 않은 채 소문만 10년간 나돌았다. 집주인들은 집을 방치했고, 원주민들은 동네를 떠났다. 유 할머니와 같은 사례는 많다. 부산연구원 박봉철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은 “부산은 정비사업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다. 특히 재개발, 재건축 대상이 되는 곳에서 전출하는 인구 수가 많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재개발이 이행되는 바람에 집주인이 관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아 피해를 보는 세입자, 기다리다 지쳐서 이탈하는 원주민 등 다양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재개발은 마을공동체 해체에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부산진구 개금3동 10통도 사정은 비슷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수십 년 터를 잡은 원주민들이 떠나 한 집 걸러 빈집이 나왔다. 텅 빈 집에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쓰레기가 쌓여 동네 전체가 빈터처럼 보였다. 50년 동안 이곳에서 산 주민 김월임(72) 씨는 “여기는 니 것 내 것 없는 동네인데 재개발이 되면서 다들 빠져나갔다. 나도 곧 나가야 할 텐데, 여길 떠나 외로워 어떻게 살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세입자이든, 자가 소유자든 사정은 달라도 수십 년 원주민 모두에게 재개발은 노후의 ‘변수’가 됐다.
대안가족 허브센터 ‘정겨움’ 정해석 팀장은 “재개발이 거론되면서 이주하는 주민이 늘어 마을이 한순간 해체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분담금을 부담하기 어렵거나, 미등록 주택의 경우 보상금이 많지도 않아 재개발된다고 해서 혜택을 받는 주민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