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업 밑천 대느라 빈털터리 됐어"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①]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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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하우스 4인방
박가을 할머니 이야기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박가을(가명) 할머니. 김보경 PD harufor@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박가을(가명) 할머니. 김보경 PD harufor@

□“다른 자식엔 말도 못하고, 폭탄 안은 벙어리처럼…” 

“택시 타고 강에 죽으러 갔어. 이렇게 거지가 돼서 살아서 뭐하나 싶어서. 큰아들은 아직도 몰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벙어리처럼 살아.” 박가을(80·가명) 할머니 인생엔 굴곡이 많다. 유화가 취미였던 박 할머니는 작은아들에게 사업자금을 대 주면서 전 재산을 한순간에 잃었다. 아들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약 30억 원 부도를 냈다. 아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막아야겠다 싶어 가지고 있던 집을 팔고 수억 원의 노후 자금을 선뜻 내밀었다. 박 할머니는 아파트에서 빌라로, 빌라에서 월세방으로 옮겼다. 이사와 적응의 연속이었다.

살던 집에서는 밤에는 쥐가 나오고 낮에는 곰팡이가 숨통을 막았다. 박 할머니를 처음 발견한 부산진구 초읍동 주민센터 엄태홍 주무관은 “검은 곰팡이가 벽을 덮어 그걸 막겠다고 스티로폼을 덧댔는데, 그 사이에 또 곰팡이가 가득 껴 있었다. 곰팡이 탓에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어서 추운 날에도 하루 종일 창을 열고 지내더라”고 말했다. 쥐를 가장 싫어했던 박 할머니는 천장에서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에, 방 안에 진동하는 쥐 오줌 냄새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쥐 소리에 진절머리가 난 어느 날 밤에 택시를 잡아타고 낙동강에 갔다. 박 할머니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어 물에 빠지려고 했다. 뛰어들려니까 몸서리치게 겁이 났다. 뒤에서 누가 끌어당기는 것 같더라. 허둥지둥 나와 맨발로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적어 놓은 유서를 울면서 찢었다”고 말했다. “쥐 소리 안 나는 집에만 살게 해 주소.” 그렇게 주민센터 직원에게 도란도란하우스를 소개받은 박 할머니는 인생 2막을 열었다.

서울에 사는 큰아들은 여전히 이 사실을 모른다. “작은놈한테 싹 뺏기고 이렇게 사는 줄 알면 큰놈이 기절하지. 형 아우 간에 우애가 상하고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겠어. 말끝에 실수할까 봐 벙어리처럼 산다니까. 큰아들은 도란도란하우스라는 이름의 아파트에 사는 줄 알아.”

쥐 없는 도란도란하우스를 박 할머니는 ‘호텔’이라 말한다. 식구도 생겼다. “다들 엄마 같아. 어디 가면 나한테 ‘내 갔다 오꾸마. 혼자 있어래이’ 그러고. ‘밥 묵으라’ ‘잘 잤어?’ 그러니까.” 떠돌던 박 할머니에게도 이제 정착할 집이 생겼다.

'도란도란하우스' 4인방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김보경 PD harufor@ '도란도란하우스' 4인방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김보경 PD harufor@

성인 자녀 뒷바라지하느라 노후 준비 ‘언감생심’

□‘캥거루족’이 만든 ‘가난한 노인’ 

부산 노년층의 가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노인 빈곤율 1위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부산의 노인은 가장 가난하다. 전국 8대 특별시·광역시 중 부산의 65세 이상 기초수급자 비율은 41%로 제일 높다. 수급자 비율이 가장 낮은 광주(28.2%)의 약 1.5배에 달한다.

부산 노인의 가난을 촉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캥거루족’이 지목된다. 캥거루족은 학업을 종료한 후에도 부모와 같이 살거나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자식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시대적 인구 변화에 따라 부산의 ‘3040 캥거루족’과 ‘가난한 7080’ 노년층이 늘었다고 설명한다.

부산복지개발원 이재정 책임연구위원은 “부산에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전국에서 제일 많다. 에코 세대(1979년~1992년생)로 분류되는 그들의 자녀 세대는 대부분 수도권으로 이동해 경제활동을 본격화하자마자 IMF 외환위기 등 금융위기를 수차례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의 부모가 노후 자금으로 자식에게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고, 이후엔 교육비 부담 때문에 부모의 노후 준비는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 경제위기로부터 자식을 구하려다 ‘노후 가난’ 수렁에 빠진 제2의 박가을 할머니, 할아버지인 셈이다.

예비 노인인 부산의 5060 중년에게도 캥거루족 문제는 반복된다. 2021년 부산에 거주하는 신중년층(만 50세~69세) 500명을 대상으로 한 부산복지개발원 조사에서 응답자 중 71.2%가 ‘자녀가 학업을 마친 후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취업, 결혼, 손주 양육 때까지 자녀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생각하는 성인 자녀의 양육 책임 기간이 사실상 ‘무기한’이 된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돈이 있으면 볶여서 죽고, 돈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고 말하는 어르신이 많다. 자식 지원을 경제적 독립 이후에는 끊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본인이 먹고 살 비용조차도 남겨 두지 못하고 자식에게 넘겨 주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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