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사무쳤는데 누님들이 생겼네요"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①]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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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하우스 4인방
심진수 할아버지 이야기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심진수 할아버지.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심진수 할아버지. 이재찬 기자 chan@

“외로워서 어째 혼자 살겠노. 같이 살아야지”

도란도란하우스의 청일점인 심진수(71) 할아버지는 지난해 은퇴했다. 아내와는 이혼하고 혼자가 된 지 오래다. 평생 나가던 회사에서 자리가 사라지고, 밤에 간간이 술잔을 기울이던 두 아들마저 수원으로 제주도로 떠나고 나니 외로움이 커졌다. 긴 밤이나 주말에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황망한 날들이 이어졌다.

하루아침에 회사 동료, 자식들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면서 심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거취를 고민했다. 요양원을 떠올렸지만 낯설었고, 출근도 자식도 사라진 집에서는 말벗이 없었다.

보다 못한 사촌누나 김 모(74) 씨는 도란도란하우스를 심 할아버지에게 추천했다. 주저하는 심 할아버지의 손을 끌고 도란도란하우스로 들여보냈다. 남자는 혼자여서 어색하고 민망할 법도 하지만 금세 세 할머니 모두 심 할아버지의 ‘누님’이 됐다.

누님들은 심 할아버지의 새로운 잔소리꾼이 됐다. 최근 병원에서 심장이 안 좋다는 진단을 받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것도, 걱정을 쏟아낸 것도 누님들이다.

심 할아버지의 사촌누나도 이제는 제5의 도란도란하우스 가족이나 다름없다. 3층의 심 할아버지에게 밑반찬을 가져다 주면서 4층의 세 할머니에게도 잊지 않고 들르다 세 할머니의 단짝이 됐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도란도란하우스의 정기 저녁 식사 자리도 꼭 챙기는 핵심 멤버다. 사촌누나 김 씨는 도란도란 모여 사는 심 할아버지를 보며 이제 맘을 놓는다. 김 씨는 “혼자 살면 외로워서 어째 혼자 살겠노. 사람들이랑 모여서 밥도 먹고 말도 하면서 이 친구 표정이 정말 좋아졌다”고 말했다.

심 할아버지에게 도란도란하우스 식구들은 일흔에 만난 새 동료들이자 친구들이다. 심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재미있게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지, 딴 거 바라는 게 뭐 있겠습니까.”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 가족들이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김보경PD harufor@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 가족들이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김보경PD harufor@

고독사 전국 1위 안타까운 통계 뒤엔 ‘관계의 단절’

'고독생'이 '고독사'로

노년의 외로움은 고립으로 이어지기 쉽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 지속되는 이른바 ‘고독생’을 겪게 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5년간 고독사 발생 현황을 조사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인구 10만 명당 고독사 발생 건수는 9.8명으로 전국 1위다. 이는 전국 평균(6.6명)보다 약 1.5배 많은 수치다. 고독사 발생 건수가 가장 적은 세종시(3.6명)의 2.7배에 달한다.

부산의 인구 10만 명당 고독사 발생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해마다 전국 평균을 웃돈다. 2017년엔 6.4명(전국 평균 4.7명)이던 고독사 발생 건수는 △2018년 8.5명(5.9명) △2019년 7.5명(5.7명) △2020년 9.4명(6.4명) △2021년 9.8명(6.6명)으로 늘어났다.

부산에 고독사가 많은 주된 이유로는 중·장년을 포함한 노인 인구가 많은 것이 꼽힌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산은 전국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고 1인 가구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이혼·사별 등 가정 해체 후 가족, 친구를 잃어 버려 혼자 사는 중·장년과 노인 고독사가 많은 편”이라며 “코로나19 확산으로 몇 년간 비대면이 익숙해지고, 노년층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고독사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50여 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요리·건강교실, 식물 키우기 등 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 구·군별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에서는 안부 확인, 반찬 배달 등을 진행한다. 지속적인 사회적 접촉을 이어가는 데 방점을 두지만 고독사 증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부산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마음을 붙이거나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중·장년, 노년층을 위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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