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라고 독립 꿈꾸지 말란 법 있나?"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①]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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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하우스 4인방
박경자 할머니 이야기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박경자 할머니.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부산진구 노인 공공 공유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사는 박경자 할머니. 이재찬 기자 chan@

“같이 사니 오줌도 맘대로 몬 눴지. 혼자 사니 참 좋다” 

박경자(80) 할머니는 독립을 꿈꿨다. 딸같이 곰살맞은 며느리였지만 거실에 있는 아들 내외가 불편할까 신경 쓰여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렸다. 고등학생 손자의 과외교사가 오면 방에서 괜히 숨을 죽였다. 밤늦게 켜 놓은 TV 소리가 방해될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박 할머니는 일찍이 남편과 헤어지고 곱창전골집을 하면서 사남매를 키웠다. 10년 전 큰아들이 집을 마련했을 때 살던 집을 팔고 아들 내외와 살림을 합쳤다. 며느리는 서운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박 할머니에겐 내내 남의 살림이었다. 친구들을 마음껏 집에 불러 깔깔대고 싶고,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내키는 대로 쏘다니고도 싶었다.

합가 10년 만에 박 할머니는 독립을 선언했다. “나 혼자 살란다.” 가족들은 기겁했다. 쓰러지면, 아프면, 식사는, 병원은. 걱정도 많았다. 박 할머니의 독립 의지가 꺾이지 않자 며느리가 사방으로 수소문했다. 독립하되 함께 할 수 있는 곳. 그렇게 도란도란하우스를 찾게 됐다.

입주 하루 전, 수영장도 등록하고 친구들을 불러 놀 생각에 밤늦게 들썩거리던 박 할머니는 그만 침대에서 떨어져 어깨 골절상을 당했다. 손꼽아 기다렸던 독립이었다. 치료 이후 입주하라는 주변 만류에도 박 할머니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먼저 입주한 유두남 할머니가 돕기로 미리 서로 말도 맞췄다. 결국 어깨에 깁스를 한 채 도란도란하우스에서 생애 첫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팔을 다친 박경자(오른쪽) 할머니의 병원 방문을 유두남 할머니가 돕고 있다. 김보경PD harufor@ 팔을 다친 박경자(오른쪽) 할머니의 병원 방문을 유두남 할머니가 돕고 있다. 김보경PD harufor@

약속처럼 3개월째 유 할머니는 박 할머니의 손이자 발이 되고 있다. 박 할머니의 병원 통원, 식사 준비, 거동은 유 할머니 없이는 꿈꾸기 어렵다. “처음 볼 때부터 저 친구가 형님아 도와줄게 집에서 나온나, 하는데 참 인연이라. 몸 나으면 보답해야지.”

이달에 깁스를 푸는 박 할머니에겐 버킷리스트가 많다. 박 할머니는 말했다. “혼자 사니까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옆방엔 항시 친구도 있고. 이래 좋게 산다. 요즘 참 좋다.”


팔을 다친 박경자 할머니의 식사를 '도란도란하우스' 식구들이 돕고 있다. 김보경PD harufor@ 팔을 다친 박경자 할머니의 식사를 '도란도란하우스' 식구들이 돕고 있다. 김보경PD harufor@

노인 56.5% “거동 불편해도 내 집서 살란다”

자녀 동거가 부담스러운 노인

노인도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한다. 노인 단독가구(노인 부부가구와 노인 1인 가구)가 보편화됐고, 자녀와의 동거를 희망하는 노인 비율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노인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가장 최근 실시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단독가구의 비율은 전체의 78.2%에 달한다. 2008년 조사에서는 노인 단독가구의 비율이 66.8%였다.

자녀와 동거하기를 희망하는 비율도 감소하고 있어 노인 단독가구의 증가 추세는 앞으로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08년에는 노인 세 명 중 한 명꼴인 전체의 32.5%가 자녀와의 동거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2017년 조사에서는 이같이 답한 노인이 15.2%에 그쳐 그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 2020년에는 10명 중 1명꼴인 전체의 12.8%만 자녀와의 동거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또 대부분의 노인은 건강이 유지된다면 현재의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조사에서는 전체의 83.8%가 이같이 답했다. 절반이 넘는 전체의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이민홍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생활을 지키면서 자신이 살아온 지역사회에서 원하는 활동을 계속하며 살고 싶어 하는 게 요즘 어르신들의 욕구”라며 “지역사회에 오래 남아서 자기다움을 유지하며,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커뮤니티 케어의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부산진구의 도란도란하우스와 같은 노인 공공 공유주택이 자립적인 생활을 원하는 노인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평가한다. 이 교수는 “독립된 방에서 생활하지만 방문을 열고 나오면 친구와 지역사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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