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두고두고 논란이 될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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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법조계에서는 ‘자백 천국, 부인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설프게 공소 사실을 부인할 경우, 괘씸죄로 형이 가중되는 경우가 많기에, 변호인으로서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의 변론 방향을 정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형사사법의 대원칙이라 하지만, 일단 기소가 되고 나면 ‘유죄 추정’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증거를 다투어 무죄를 선고받기는 참으로 어렵고도 드문 일이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받은 관련자들의 진술 조서에 일일이 부동의를 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반대 신문을 진행하는 형사 절차는 피고인에게 법으로 인정된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러한 증거가 수십 개일 경우 그 모든 진술을 부동의하고 증인 신문을 진행하는 일은 실제 재판에서 쉽지 않다.

기소 후 ‘공소 사실’ 부인 쉽지 않아

곽상도, 윤미향 등 무죄 판결 쏟아져

고위 공직자만 ‘무죄 추정 원칙’ 적용

교과서처럼 피고인 권리 철저히 보장

50억 원 퇴직금 누구에게나 가능할까

일반인도 법 앞에 평등한지 살펴봐야

몇 년 전, 업무상횡령죄 등으로 기소된 사건을 변론했다. 검찰은 20명 이상의 관계자들로부터 토씨 하나까지 똑같은 내용의 진술서를 받아 이를 모두 증거로 제출했지만, 그 내용이 실제 진실과 다르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이었기에 모두 부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그 사건의 재판장님은 변호인인 내게 “재판 과정에서의 증거인부에 대한 태도도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라는 강압적인 발언을 하였다. 본격적인 재판 시작도 전에, 증거를 다툰다고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발언을 하다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재판부의 눈총을 받으면서 가슴 졸이며 수차례에 걸쳐 모든 진술자에 대해 증인 신문을 진행했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서야, 그 모든 과정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만큼 양형에 불이익을 입게 될까 봐, 일반인 입장에서는 재판 과정에서 공소 사실을 부인하고 증거의 신빙성을 다투어 무죄를 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어렵다는 무죄 판결 소식이 요즘 여기저기서 들린다. 곽상도 의원 아들 퇴직금 50억 원 뇌물수수 무죄, 윤미향 의원 업무상횡령 등 대부분 무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대한 직권남용 무죄 등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의 무죄 판결 소식을 듣고 국민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 때문인 걸까, 사회적으로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만 유독 엄격히 적용되는 무죄 추정의 원칙 때문인 걸까. 재판 진행 횟수와 그 기간만 보더라도 교과서에서 나오는 표본대로 형사상 피고인의 권리를 철두철미하게 보장하고, 그 판결 역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을 너무나도 잘 반영하는 것 같다.

사건 기록 전체를 보지 않고서 판결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6년간 일하고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아 기소된 뇌물죄 사건에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도대체 어떻게 곽 의원 아들이 6년간 일을 하고 50억 원이라는 퇴직금을 받았는데도, 곽 의원이 무죄를 받을 수 있었는지 판결문을 들여다보니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사회 통념상 아들은 혼인 후 독립적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곽 전 의원이 아들에 대한 부양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곽 의원 아들이 받은 돈과 이익을 곽 의원이 직접 수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대목에서 재판부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곽병채 씨는 곽 전 의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화천대유에 입사할 수 있었고, 근무 기간, 월급 수준 등을 볼 때 50억 원은 국회의원 아버지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인데, ‘사회 통념’이란 말이 일반 국민의 눈높이와 왜 이리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이번 판결 논리라면, 결혼하여 분가한 고위공직자의 자녀를 취업시켜 상여금,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막대한 돈을 주는 방법으로 뇌물을 주면, 뇌물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고, 고위공직자 입장에서는 증여세까지 면제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렇게 곽 의원은 50억 원 뇌물수수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에서 나오며 “무죄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고, 검찰은 국민 상식에 맞지 않다며 항소를 했다.

대법원은 얼마 전 마약류관리법 위반 사건에서 ‘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됐다거나 사실 인정에 이르는 논증이 논리와 경험 법칙에 어긋나는 등으로 그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면 1심의 사실 인정에 관한 판단을 항소심이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까지 선고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검찰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항소심에서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이대로 무죄 판결이 확정된다면 두고두고 논란이 될 판결임은 분명하다. 더불어 고위공직자들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법에서도 그 무죄 추정의 원칙이 그토록 잘 지켜지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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