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챗GPT와 주체적 글쓰기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챗GPT가 화제다. 과제물이나 보고서, 기사나 서신까지 맞춤형으로 글을 생성한다. 몇십 초 내지 몇 분이면 충분하다. 신뢰도 높은 내용에 더해 민감한 질문에는 은근슬쩍 회피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문체에다 맞춤법 오류나 비문도 거의 없다.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마주하며 하염없이 보낸 밤들을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애써 써놓은 글을 갈아엎고 다시 써야 할 때의 막막함이나 원고마감의 압박은 또 어떤가. 글이 갈팡질팡 날뛸 때나 잔재주를 부린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무력감에 무릎이 꺾이기 일쑤다. 고통 없이 순식간에 글을 버젓이 완성하는 챗GPT가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 있으랴.
조지 오웰은 생계 목적을 제외하고 글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보았다. 첫째, 똑똑해 보이거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이기심의 발로다. 둘째,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낱말이나 낱말들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를 인식하는 미학적 열정이다. 셋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후세에 전하려는 역사적 충동이다. 넷째, 정치적 목적이다. 지향하는 세상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은 〈1984〉와 〈동물농장〉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한 역작이다.
예전에는 글쓰기가 전문 문사들의 특권적 영역에 속했다. 소셜 네트워크와 인터넷 문화의 확산은 대중을 글쓰기 주체로 호출했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쓰고 발표한다. 글 쓰는 대중의 탄생과 글쓰기 열풍에는 SNS나 블로그, 글쓰기 플랫폼과 같은 다양한 공론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취미나 취향, 사소한 일상까지 글이 되고 책이 되는 시대다. 이제 글쓰기는 개인의 자기표현 욕구 충족에서 나아가 셀프마케팅과 상품화의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챗GPT의 등장은 기술에 기대어 정보를 검색하고 이를 손쉽게 가공하는 디지털시대의 경이로운 글쓰기 풍경을 보여준다. 개인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드높이고 창작의 패러다임을 급속하게 재편할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창작과 가공, 표절과 혼성모방 등 글쓰기의 윤리 문제에 관한 논란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왜 쓰는가,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무겁게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에 대한 글쓰는 주체 ‘나’의 관점이다. 글은 문장으로 표현된 나의 인식 체계다. 설령 고통이 동반되더라도 예리한 통찰력으로 불확실한 시대를 응시하는 주체의 글쓰기는 바로 자기자신을 견고하게 형성하는 과정이다. 챗GPT의 창으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세상과 주체의 심연, 이것이야말로 텍스트의 네트워크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