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리의 상상력이 닿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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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여행 유튜브를 즐겨본다. 게으른 몽상가의 기질을 타고난 내게는 참 좋은 세상이다. 나는 편안하게 안방 침대에 누워 나 대신 누군가의 경험을 생생하게 대리 체험한다. 하루에 여러 나라, 여러 곳을 둘러볼 수도 있지만 나는 대체로 한 장소에 대한 여러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보고 그것의 총합을 취한다. 내가 직접 하는 여행보다는 덜 하겠지만 여행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에너지에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나는 곧잘 새로운 여행지에 빠져 며칠 동안 영상을 탐한다. 지난주 나는 치앙마이를 다 가본 것처럼 알게 됐다.

내가 아는 소설가는 구글 지도만 보고 여러 도시가 배경인 장편 한 편을 썼다. 또 다른 작가는 친구가 보내 준 메일 몇 통과 이미지 사진으로 뉴욕 이민자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써냈다. 경찰서 유치장을 실감 나게 쓴 작가는 한 번도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몇 년 전 다큐 프로그램 제작자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적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입을 모아 분명 방송 쪽 일을 하는 사람일 거라고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어떤 작가는 생생하게 경험한 장소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 못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의 경험은 상상력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을 쓸 때 자기 체험과 인터뷰, 자료 조사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경험과 자료가 있다고 해도 내가 쓸 수 있는 건 몇 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넘치는 경험과 인터뷰, 자료가 참고에 그치고 버려질 때, 나머지 빈 곳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상상력에는 힘이라는 말이 자주 붙는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내는 힘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어떤 사물이나 공간, 상황을 우리가 본 것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그려낸다. 구체적 체험보다 더 선명한 상상적 체험을 남기는 글은 많다. 하지만 유튜브로 이러한 상상력을 보충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화면 속에서는 대부분 좋은 것들만 편집되어 제공되기 때문이다. 어둡고, 위험하고, 힘들고, 지치고, 냄새나는 것들은 적당히 걸러진다. 아마 조회 수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인 것 같다.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독사 기사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가 숨진 쪽방에서 4개월 후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한다. 쪽방에는 여전히 각종 고지서가 쌓이고 있다고 한다. 밀린 공과금이 알리는 죽음들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파트 수신함에 우편물이 쌓여 있으면 나는 상상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올해 한 지자체에서는 동별로 ‘대문 살피기의 날’을 지정했다. 통장과 반장이 지역 내 모든 가구의 대문과 우편함을 살펴 고지서, 전단이 쌓여 있는지 확인하고 위기가구를 늦기 전에 발굴하기 위함이다.

김현은 〈분석과 해석. 보이는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 전망〉이라는 책에서 “모든 예술 중에서, 소설은 가장 재미있게, 내가 사는 세계는 살 만한 세계인가 아닌가를 반성케 한다. 일상성 속에 매몰된 의식에 그 반성은 채찍과도 같은 역할을 맡아 한다.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라고 했다.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아니라도 나는 우리가 이웃과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상상했으면 좋겠다. 자기 죽음을 신고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그래서 지금도 ‘우편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상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상을 현실에서 확인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 만하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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