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후보 땐 대중 강경 발언·당선 후에는 미·중 사이 줄타기” [코리아 리포트]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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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매체, 한·중 관계 재조명
대중 매파적 보수 정권임에도
사드 추가·쿼드 가입 흐지부지
“중 때문 윤·펠로시 면담 불발”
지지층 노린 정치 수사 가능성
“후보 발언이 꼭 실현되진 않아”

윤석열 정부 출범 9개월 뒤에도 한국 정부는 예상과 달리 미·중 사이 균형외교를 취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출범 9개월 뒤에도 한국 정부는 예상과 달리 미·중 사이 균형외교를 취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은 전 정권이 유지해 온 미·중 균형 외교 종식의 신호탄으로 인식됐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했던 발언에 미뤄 한국은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확실히 미국에 밀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윤석열 정부 9개월에 들어선 시점에서 한국은 정말 중국과 거리를 뒀을까. 최근 미국과 일본 매체에서 한국의 현 보수 정권이 기대와 달리 여전히 중국 눈치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 의식해 펠로시 외면?

지난 18일 미국 외교 전문 매체 디플로맷은 ‘중국에 대한 한국의 지속적인 자제’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지난 10일엔 일본 영자지 니케이아시아가 ‘미국은 한국의 윤 대통령이 중국에 맞설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칼럼도 내보냈다. 디플로맷의 기고자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퀸시연구소 제임스 박 연구원이며, 니케이아시아 칼럼의 글쓴이 역시 미국 글로벌 정책 전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데릭 그로스만 연구원이다.

두 칼럼의 공통적인 주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취했던 대중 강경 태도와 달리 출범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취한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 매체에 이런 논조의 칼럼이 실렸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이 서둘러 미국에 줄 서기를 재촉하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로스만과 박 연구원이 윤석열 정부가 여전히 미·중 사이에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제시한 근거는 무엇일까.

두 사람은 시계를 지난해 8월 2일로 되돌린다. 당시 낸시 펠로시 전 미 하원의장이 중국의 위협 속에 대만을 방문한 뒤 서울을 찾았을 때 윤 대통령은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펠로시 전 의장과의 만나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 사이 전화 통화는 이뤄졌다. 두 연구원은 윤 대통령과 펠로시 전 의장의 대면 불발 원인으로 윤 대통령의 중국 눈치보기로 결론 내렸다. 그로스만 연구원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전 의장을 어설프게 경계한 것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8월 9일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 사령탑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만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고 썼다.

■사드 추가·쿼드 가입 주저

두 연구원은 칼럼에서 집권 전후 윤석열 정부의 대중 태도 변화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마치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중 강경 발언을 지켜야한다고 다그치는 것처럼 읽힌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사드 3불 정책’을 중국에 굴종한 행위로 비판한 바 있다. 사드 3불의 핵심은 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윤 대통령이 사드 추가 배치 공약을 접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은 2017년 한국의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보복했다. 사드 포대를 더 많이 배치하면 한국은 미·중의 십자포화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한국은 사드 추가 배치를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두 칼럼은 또 윤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목표로 둔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자간 안보 협의체(쿼드) 참여에 대해 후보 시절과 달리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미국 주도의 ‘칩4’ 또한 한국의 망설임으로 큰 진전 없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공약 아닌 정치적 수사”

윤 대통령은 정말 후보 때 중국에 겨눴던 칼을 집권 뒤에는 칼집에 꽂은 것일까. 사실 현재 한국의 보수 정권도 애초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정책을 실천으로 옮길 의지조차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대중 강경 발언과 공약이 실상은 지지 세력을 위한 정치적 수사에 가까웠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국에만 발견되는 현상도 아니다.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차창훈 교수는 “미국 싱크탱크 연구원들은 현재 윤 대통령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 불만을 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보통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선거 기간 쏟아진 후보자 발언이 실제 권력을 잡았을 때 실행으로 바로 이어진다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또 “아마도 정부는 중국이 국민들의 생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역상대국이다 보니 사드 추가 배치 등을 신중히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미국 또한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과거 대선 후보들이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중국에 대해 매파적인 발언을 구사했음에도 집권 뒤에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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