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원북원부산' 20주년을 맞아
김상훈 문화부장
2004년 출범 독서생활화운동
공정하고 투명하게 ‘원북’ 선정
‘책 읽는 부산’ 조성에 크게 기여
‘생각하고 토론하는 사회’로 정착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로
‘품격 있는 도시, 부산’ 만들어야
“좋은 책을 읽으면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된다. 책 열 권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깊이 읽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여유가 중요하다. 좋은 책은 굳어진 나를 흔들고 출렁이게 한다. 그 출렁임은 견고한 아집을 무너뜨리고 삶의 깨달음을 준다.”
2020년 산문집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로 ‘원북원부산(One Book One Busan)’ 일반 도서에 선정된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3년 전 이 교수를 인터뷰할 때 들었던 이 말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원북원부산’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원북원부산’은 ‘책 읽는 도시 부산’을 목표로 2004년 출범한 범시민 독서생활화운동이다. 출범부터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이 주최해 왔으며 현재 부산시민도서관을 비롯해 부산지역 48개 공공도서관(분관 포함)이 공동 주관하고 있다. 원북원부산은 20년 동안 부산 시민들이 참여해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읽고 토론하는 장으로 역할을 했다. 부산시민도서관 등은 원북원부산 어울림 한마당 외에도 원북 독서릴레이, 원북 독후감 공모, 원북 작가 순회 강연회와 같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원북원부산은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독서인구 저변 확대를 통해 ‘책 읽는 부산, 생각하는 시민, 토론하는 사회’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
원북 선정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 14명으로 구성된 원북원부산 도서선정위원회가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된다. 위원들은 매달 130여 권의 검토도서를 읽고 토론을 거쳐 원북 후보도서 목록을 축적한다. 여기에 독서단체, 학생, 학부모, 독서전문가, 시민 등으로부터 연중 추천도 받는다. 추천도서 검토 뒤 12월에 다음 해 원북 후보도서 100권을 선정한다. 그 뒤 원북원부산 선정협의회를 개최하고 독서와 토론을 거쳐 다음 해 1~2월에 단계별(100권→50권→25권→9권)로 후보도서를 선정한다. 올해는 특별히 20주년 기념 부산도서 10권을 추가해 총 110권을 선정했으며 단계별로 110권→58권→30권→12권 순으로 줄였다.
원북원부산 20년 역사에서 2020년은 커다란 전환기였다. 우선 사업 명칭이 ‘원북원부산 운동’에서 ‘원북원부산’으로 바뀌었다. 원북 최종도서 선정도 1권에서 일반, 청소년, 어린이 등 독서 대상별로 총 3권을 뽑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 방식을 적용해 2020년에는 이국환 교수의 산문집 외에 청소년 부문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어린이 부문 이혜령 작가의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가 원북 도서로 선정됐다. 주최 측은 그해 4월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원북원부산 어울림 한마당’을 열 계획이었지만 사상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행사를 연기했다. 이국환 교수는 당시 인터뷰 때 “원북은 단순히 책 한 권을 함께 읽자는 것이 아니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에게 닿는 길 하나를 함께 열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독자들과 책에 관해 토론하는 공유의 기회가 위축돼 아쉽다.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열리면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고 기자에게 심정을 전했다. 선정 작가 3명은 우여곡절 끝에 두 달 뒤인 6월 부산시민도서관 시민소리숲에서 규모를 축소한 북콘서트 형식으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은 원북 선정 방식 변화는 물론, 원북 행사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달 초 ‘2023년 원북 후보 도서’가 확정됐다. 올해는 원북원부산 20주년을 기념해 일반·청소년·어린이 외에 부산 도서 부문을 추가해 12권(부문별 3권)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일반 대상 후보 도서는 〈단어의 집〉(안희연, 한겨레출판) 〈돌보는 마음〉(김유담, 민음사) 〈헌책방 기담 수집가〉(윤성근, 프시케의숲)이다. 청소년 대상 후보 도서는 〈지금 당장 기후 토론〉(김추령, 우리학교) 〈페퍼민트〉(백온유, 창비) 〈훌훌〉(문경민, 문학동네)이다. 어린이 대상 후보 도서는 〈6분 소설가 하준수〉(이수용, 위즈덤하우스) 〈거짓말의 색깔〉(김화요, 오늘책)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김효은, 문학동네)이다. 부산 관련 후보 도서는 〈망치질하는 어머니들 깡깡이마을 역사 여행〉(박진명, 너머학교) 〈부산에 살지만〉(박훈하, 비온후) 〈호텔 해운대〉(오선영, 창비)이다. 부문별 최종 한 권을 가리기 위한 부산 시민 투표는 3월 16일까지 부산시민도서관 홈페이지, 부산지역 공공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오프라인 투표는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투표지를 활용하면 된다.
올해는 어떤 책들이 원북에 선정될지 벌써 궁금하다. 많은 시민이 원북과 함께 책 속으로의 즐거운 여행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받아 원북원부산이 ‘품격 있는 도시, 부산’을 만드는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