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08. 영화와 현실의 단편 합성하다, 강홍구 ‘도망자-광주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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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1956~)는 전라남도 신안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강홍구는 목포교대를 나와 몇 년간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한 뒤 화가를 꿈꾸며 미대에 다시 진학했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광고나 영화 스틸 이미지를 활용한 합성 사진을 자신만의 작업 방향으로 정했다.

강홍구는 스스로를 ‘B급 작가’로 자처했다. 초기 작품의 경우 대중매체에서 빌어온 이미지를 활용해 초현실적인 합성 사진을 만들었다. 손으로 그리는 회화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는 기계로 인화지를 출력해서 벽에 꽂는 전시 방식을 택함으로써 컴퓨터 사진의 가볍고 일회적인 특성을 강조해 왔다.

강홍구는 초고속으로 근대화를 이룬 한국 사회의 특수한 현실과 그 편린을 직접 겪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풀어낸다. 강홍구가 집필한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디카들고 어슬렁〉 등 미술 관련 책에서 이야기하는 ‘세상 탐구’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역사 이데올로기 등에 의해 가려지고 소멸되는 인간 삶의 편린에 대한 기록이며 주장이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주장처럼 현실의 총체적인 어떤 것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더 이상 통일성·총체성이 불가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진은 △현실의 파편성을 통해 △그러한 파편이 새롭게 짜일 수 있는 전망을 통해 ‘진정한 변혁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관점이 생긴다.

사진에 대한 강홍구의 입장은 시각 이미지와 신화화된 미술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점점 확장되어 왔다. 소개하는 작품 ‘도망자-광주사태’는 낯익은 영화 속의 한 장면과 현실(혹은 작가 자신)의 단편을 합성한 형식이다. 작품은 대중적인 친근감을 지니지만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된 집단공포, 제도나 자본에 의해 작동되는 욕망, 그리고 인간의 가식과 억압된 무의식을 폭로한다.

강홍구의 ‘도망자’ 연작은 영화의 장면과 작가 자신의 연출된 모습의 합성을 통해 실제와 가상, 영상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특히 ‘도망자’ 연작은 사회적 폭압과 개인적 무기력의 관계, 그리고 비극적 현대사가 한 작가에게 미친 심리적 상흔을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패러디한 특이한 작품이다.

김지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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