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메타버스와 마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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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전통 언론, 구태의연 제작 방식 이어 가
인터넷·모바일 뉴스 시장 포털에 내줘
혁신 노력과 정보 전달 방법 고민 통해
메타버스·인공지능 시대 잘 대응해야

한동안 메타버스 열풍이 불었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 세계에서 아이돌과 대화하고 쇼핑하며 서핑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마법의 장치는 판타지 영화 ‘아바타’의 현실판으로 통한다. IT업체뿐 아니라 지자체, 공기업, 교육기관까지도 잇따라 이 유행에 동참을 선언했다. 언론도 메타버스 띄우기에 나섰다. 언론 보도는 장밋빛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초실감형 메타버스 세상이 열린다’, ‘K팝에 옮겨붙은 메타버스 열풍’ 같은 제목의 기사를 보면 업체 홍보자료가 아닌지 종종 헷갈릴 정도다.

최근에는 메타버스와 더불어 챗GPT도 화젯거리다.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구글처럼 이용자가 원하는 검색 결과를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질문에 맞춰 스스로 방대한 자료를 학습하고 판단한 후 논리적 해답을 작성해 제공한다. 이미 챗GPT는 변호사와 의사 자격시험을 통과할 정도의 역량을 입증했다. 뉴스 매체도 챗GPT가 취재해서 기사를 작성하고 메타버스를 통해 현실 세계처럼 생생한 입체적 스토리로 구성해 제공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장기적인 쇠퇴기에 접어든 전통적 언론 매체가 새로운 기술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의 열기를 보면서 문득 1990년대 인터넷이 등장했을 무렵 언론사들의 대응 양상이 떠올랐다. 당시 기사를 온라인으로 전하고 읽는다는 혁신적인 구상은 주요 신문사들이 가장 먼저 실행에 옮겼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신생 업체이던 네이버가 전통 매체를 누르고 온라인 뉴스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신문사들이 실패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이들은 대개 인터넷이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는 신기한 사업이라고만 여겼고, 편집국의 주요 업무는 이전처럼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지속됐다. 네이버가 카페와 토론방 등 새로운 이용자 참여 모델로 저변을 넓혀 가는 동안 신문의 온라인 서비스는 종이 기사를 퍼나르는 식의 구색 맞추기에 그쳤다. 이후 모바일과 플랫폼 기반의 환경으로 옮아가고 나서도 뉴스 업계 종사자의 사고방식은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담아야 한다는 오랜 상식은 무시됐다.

메타버스와 챗GPT가 언론사 운영에 일부가 될 무렵 언론은 어떻게 바뀔까? 혹 인터넷 도입기의 교훈을 잊은 채 과거의 공식을 되풀이하지는 않을까? 구글과 네이버 같은 공룡 IT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이 기술로만 승부해서는 승산이 없다. 결국 아무리 편리하고 경이로운 테크놀로지라도 결국 그에 걸맞는 콘텐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관광객처럼 신기한 경험을 위해 지속적으로 돈과 시간을 지출할 이용자는 많지 않다.

전통적 뉴스 매체는 눈부신 속도로 변해 가는 테크놀로지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정작 주변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잘 간파하지 못하는 듯하다. 테크놀로지 변화의 속도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인 것과 마찬가지로, 미디어가 다루어야 할 사회 환경도 빠르게 변화한다.

급속한 변화가 대세인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대부분 암울한 조짐뿐이다. 일반 시민에게 고물가와 고용 불안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갓 사회에 뛰어든 젊은이에게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조차도 힘겨운 쟁취 대상이 됐다.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노령화하고 있다. 젊은 남녀가 취업해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평범한 가족 형태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사치로 통한다. 최근 경로 무임승차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책임 공방을 넘어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각자도생의 험악한 경쟁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다가올 멋진 신기술의 세상에서도 노령화, 출산율 추락, 고용, 연금, 대중교통, 물가 등 구시대의 낯익은 문제는 여전히 언론이 다루어야 할 내용이다. 언론 역시 이러한 추세를 추적하면서, 그에 적합한 주제 선정과 정보 전달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기술은 새 구상을 실행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요즘 언론이 평범한 시민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언론의 뉴스 가치 기준이나 주제, 기사 양식 등은 변화된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허점을 너무나 많이 드러내고 있고, 자기 혁신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언론의 감각은 30년 전의 세상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언론이 메타버스와 챗GPT가 가져올 아바타의 세계에 흥분할 때, 나는 쇠락한 구도심 주택가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주름진 노인의 얼굴이 우리 미래상으로 떠오른다. 지금은 메타버스가 아니라 마을버스가 우리 삶에 더 절실한 문제다. 언론 역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떠나가는 이용자를 붙잡을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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