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방관의 기도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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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중략)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의 일부다. 1958년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창문을 통해 어린이 3명을 확인했으나 건물 내 안전장치 때문에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자책감에 기도문 형태로 쓴 시다. 원작자 확인 전까지 작자 미상으로 전해져 왔는데 이제는 전 세계 소방관들의 복무 신조처럼 쓰인다.

국내에는 2001년 3월 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주택 방화로 소방관 6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를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당시 순직한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 위에 이 시가 발견되면서다. “내 아들이 안에 있다”는 집주인의 한마디에 소방관 9명이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비옷)을 입고 시뻘건 화마로 뒤덮인 건물에 진입했는데 건물이 무너져 화를 당했다. 대한민국 소방 역사상 최악의 참사다. 불과 사흘 뒤 부산 연제구 연산동 빌딩 화재 현장에서 김영명 소방관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졌다. 다단계판매 업체 사무실 방화였는데 사제 폭발물이 터져 화재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김 소방관이 숨지고 2명의 소방관이 부상을 당했다. 동래구 사직동 소방파출소 앞마당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 김 씨의 부인이 열한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을 부둥켜 안고 오열해 영결식장이 눈물바다가 됐다.

김 소방관 순직 22주기 하루 전인 6일 전북 김제의 주택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 작업을 벌이던 성공일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다. 성 소방관은 4수 끝에 꿈을 이루고 임용된 지 10개월 남짓한 새내기 소방관이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70세로 공무원 중 가장 짧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다른 공무원보다 3배 가까이 많다. 강도 높은 야간 근무와 화재 진압 시 유해 물질 흡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의 희생에 우리가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오영환 소방관은 자신의 책 〈어느 소방관의 기도〉에서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실감하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도 재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일 소방관들의 안녕을 빈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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