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의사 찾아 삼만리'…의료불모지 경남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산청군, 1년째 내과 전문의 못 구해
경남 14개 시·군 응급의료취약지역
100만 도시 의대 없는 곳 창원 유일
의대 설립·의사 정원 늘리기 안간힘
인간의 요구와 욕구에 대한 간절함을 떠올리는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
이 동화는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단편 ‘아펜니노에서 안데스까지’를 번역한 것이다. 9살 소년이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찾아 이탈리아 ‘아펜니노산맥’ 끝자락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까지 무려 1만 2000km를 다니며 겪게 되는 역경을 소개한다. 최근 경남에 이 같은 간절함만큼이나 절실한 것이 ‘의사 모시기’다. 공공병원은 물론 사설 병원에서도 의사 구하기에 혈안이다. 인구 3만 4000여명의 농촌 지자체인 산청군은 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12개월째 허송세월하고 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지난해 4월 내과 전문 공중보건의 복무기간이 만료됐지만 최근까지 후임자를 받지 못했다. 그동안 3차례에 걸친 내과 전문의 채용면접에서 적임자가 없어 4차 모집공고를 내놓은 상태다. 채용 조건은 연봉 3억 6000만 원에 계약 기간 2년,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 등으로 타 지역 공공의료원보다 대우가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령인구가 대부분인 주민들은 공공병원인 산청군보건의료원 의료서비스에 의존하고 싶지만, 정작 의사가 없다. 진료를 받기위해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이 있는 인근 진주시로 원정을 가야한다.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의료비에다 원정 교통비까지 지불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사설 병원도 의사모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남에서 유일하게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창원에서조차 의사 구하기는 어렵다. 창원지역 한 종합병원은 7개 진료과를 갖춘 또 다른 소규모 병원을 개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수백억 원을 들여 건물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올해 3월 초 개원 목표로 추진했지만 최근 연기 결정을 내렸다. 건물 리모델링과 간호사, 행정인력 등 모든 조건을 갖췄지만 의사 확보가 문제였다. 15~20명 의사가 필요했지만 지원 인력은 1~2명에 불과했다는 후문이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요양병원도 의사 모집에 혈안이다. 창원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A 씨는 “연봉 15%를 인상한 상태에서 의사모집 공고 5개월만에 겨우 1명 구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5개월동안 원장을 비롯한 의사 4명이 늘어난 야간당직으로 생지옥을 경험했다”면서 “의사 확보가 병원운영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경남도내 의사부족은 객관적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경남에는 인구 10만 명당 의대 정원이 2.3명으로 전국 평균 3분의 1에 불과하다. 경남도와 18개 시·군이 필수 의료서비스 제공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공병원 신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사 인력을 공급하는 의대 정원은 진주에 있는 경상국립대학교 76명이 전부다. 경남의 인구 절반에 못 미치는 153만인 강원도는 4곳 의대에서 267명을 배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남도내 18개 시·군 가운데 14개 지역이 응급의료취약지역으로 지정될만큼, 의료공백이 심각하다.
지역과 수도권 의료격차도 크지만, 지역간 불균형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 가운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곳이 창원시다. 창원시는 최근 ‘창원 의과대학 유치 기획단’을 구성해 활동에 착수했다. 오는 27일에는 경남도와 창원시가 국회에서 ‘창원 의과대학 유치’ 토론회까지 계획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창원을 중심으로 의과대학 유치 등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상태다.
의료인력 확충을 공약으로 걸었던 박완수 도지사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의대 유치는 지역에서 오래 논의한 문제로, 경상대 의대 정원이 확대되고, 창원에 의대가 들어서는 두 가지가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남도는 지난해부터 의대 유치 등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의과대학 설치 TF’를 운영 중이다. 의과대학 설치에 대한 간절함이 경남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지만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이 지역 간, 이해 당사자 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창원지역 의대 설립에 대한 열망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찬물을 끼얹는 언사도 나왔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달 서울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정년 퇴직한 의대 교수 등 ‘시니어 의사’의 활용을 제안한다”고 대답했다. ‘지방에 의사가 모자란 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시니어 의사’는 일시적 해소방안이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이 회장에게 의료서비스 확충에 대한 경남도민의 간절함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