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서기’ 임나 지명, 가야에 적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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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식민사관청산가야사부산연대 사무처장

제국주의가 판치던 시기, 일본군 참모본부는 1882년 〈임나고고〉와 〈임나명고〉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야마토 왜의 식민지 임나를 가야와 동일시하면서 조선 침략의 근거로 삼았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임나는 숭신(崇神) 65년(기원전 33년) 이전부터 일본열도에 존재한 나라였다. 가야는 서기 42년에 건국되었으니 둘의 건국 연대는 75년 이상 차이가 난다. 임나와 가야는 건국 시기도 다르고 멸망 시기도 다르다.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서는 임나일본부를 포함한 한일간 공동역사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었고 공동연구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정작 임나를 가야와 동일하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만약 광복 78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가야를 임나라고 주장하는 설이 혹시라도 우리 역사학계에 암묵적인 수용과 동의로 내재하고 있다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후인 1949년 일본 식민사학자 스에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임나흥망사〉를 저술해 〈일본서기〉 임나 지명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조선 재침략의 논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본서기〉 신공여왕 원년(200)의 ‘삼한(고구려·백제·신라) 정벌 기사’를 정한론의 배경으로 삼았다. 신공여왕 49년(249) ‘임나 7국 정벌 기사’의 7국을 ‘비자발-창녕, 남가라-김해, 녹국-경산, 안라-함안, 다라-합천, 탁순-대구, 가라-고령’ 식으로 비정해 임나 지명을 가야에 심어 놓았다. 일본 우익 교과서도 가야 지역을 임나로 표현하면서 회복해야 할 역사의 땅으로 배우고 있다.

과연 임나 지명을 가야에 적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본열도에서 찾아봐야 하는지 몇몇 지명을 살펴보자. 합천 다라리(다라곡촌)는 한글학회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마을이 달처럼 생겼다 하여 다라실, 다라동, 월곡으로 불렸고, 협소한 골짝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규슈 사가현에 다라산, 다라촌이 있고, 야마구치현에도 다라마을, 다라강이 있는 등 일본열도에는 ‘다라’ 지명이 수십 개 있다.

함안은 어떠한가? 아라가야(아시량국, 아나가야)는 〈삼국사기〉에선 법흥왕(514~540) 때 멸망했고, 〈대동지지〉에선 법흥왕 24년(537) 이전에 멸망했다고 한다. 〈일본서기〉의 ‘안라’는 541년 이후에 나오는데 언제 망했는지 모른다. 현재 일본 교토 인근에 안라신사가 있고, 다른 지역에는 안라, 안라산, 안라성, 안라마을 등 안라와 관련된 지명이 있다. 남원은 어떠한가?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기문 반파고〉에서 남원의 옛 이름 ‘고룡’을 〈일본서기〉 ‘기문’과 음이 비슷하다 하여 기문을 마음대로 남원에 적용했다.

합천, 함안, 남원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다라, 안라, 기문이라는 주장은 임나를 가야에 심으려는 식민사학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는 양직공도에 나오는 상사문(上巳汶)을 상기문(上己汶)으로 해석하고, 백제 22담로의 부용국이라는 기문과 다라를 한반도 잘못 비정하고 있다. 일본열도 오사카만에 담로도(淡路島)가 있는데, 차라리 이곳에서 기문과 다라를 찾아야 한다.

지금 뼈아픈 점은 우리 역사학계가 지난해, 합천을 〈일본서기〉 ‘다라국’으로, 남원을 〈일본서기〉 ‘기문국’으로 칭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시도한 것이다. 이를 알고 ‘남원 시민연대’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는 강력히 항의했다. 문화재청은 2022년 4월 항의를 수용해 ‘다라국’을 ‘쌍책 지역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기문국’을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바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보낸 바 있다.

〈일본서기〉는 기본적으로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사건의 연대와 내용을 조작하고 부풀려 기록한 역사책이다. 고대 일본열도로 건너간 가야·고구려·백제·신라 세력의 활동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우리 역사학계는 식민사학자의 논리에 의존하지 말고 일본열도에서 임나 지명을 찾고 복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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