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포와 엑스포(浦)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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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콘텐츠센터장

국제영화제, 북항재개발, 가덕신공항
도시 역량 총동원 어려운 도전 성공
1995년 388만 명 이후 인구 감소세
도시 활력 높일 새로운 돌파구 시급
엑스포실사단 6일부터 현지실사
다음 달 부산·한국 장점 잘 알려야

일제가 그린 1960년 부산의 계획인구는 30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부산의 다이내믹한 운명을 짐작했을 리 만무하다. 해방 때 28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1949년 이미 47만 명이었다. 한국전쟁 때 천일 동안 임시수도가 되면서 2년 만에 다시 배(84만 명)로 늘었다. 1955년 100만 명을 돌파한 뒤에도 대한민국 제2 도시로 덩치를 키웠다.

인구가 계속 늘었다는 것은 숱한 꿈들이 이 도시에서 모이고 탄생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생존이든, 성공이든, 배움이든 부산은 넉넉한 무대였다. 그 꿈들이 경쟁하고, 좌절하고, 조화하며 부산을 만들어 왔다.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부산은 언제나 맨 앞에 있었다. 부산의 꿈이 곧 대한민국의 꿈이기도 했다.


부산을 바꾼 여러 꿈 가운데 대표적인 게 부산국제영화제다. 1990년대 중반 영화를 좋아하는 몇몇(이용관·전양준·김지석)이 “우리도 영화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 꿈을 부산시(시장 문정수)가 거들고, 시민이 응원하고, 언론이 힘을 보태 1996년 BIFF가 탄생했다.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문화 불모지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성공하겠냐는 우려가 컸지만 오기와 집념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중앙SUNDAY 올 1월 인터뷰)

당시 영화를 담당했던 〈부산일보〉 김은영 기자(현 문화부 부국장)는 이렇게 회상한다. “2회째인가.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극장에서 쥐가 나온 거예요. 기사로 써야 되나 고민하다가 안 썼어요. 가뜩이나 달가워 하지 않는 서울언론사들이 떼로 비난할 게 뻔했으니까요.” 그는 영화제가 끝나고 이 내용을 보도했다.

노무현 정부 때이던 2005년 지역균형발전 사례를 배우러 유럽에 갔다. 그때 동행한 청와대 관계자가 했던 말이 지금도 또렷하다. “부산은 국제영화제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부산은 저력이 있는 도시입니다.” 그 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북항재개발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첫 항만재개발 사업이다. ‘북항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모토 아래 워터프런트(수변공간)를 줄기차게 요구한 결과다.

가덕신공항도 2전3기의 산물이다. 2011년과 2016년 정부가 백지화했던 것을 2018년 오거돈 부산시장 때 시민들이 불씨를 살린 것이다. 2021년 2월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사업이 되었다. 부산의 성취를 돌아보건대, 어느 것 하나 거저 주어진 것이 없다.

이처럼 꿈에 부풀었던 부산이 갈수록 쪼그라든다. 꿈을 찾아 모이던 곳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곳으로 전락했다. 패배의 언어가 난무한다. 출생률도 서울 다음으로 낮다. 인구는 1995년(388만 명)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리막길이다. 현재 331만 명까지 떨어졌다. 이대로 ‘노인과 바다’의 도시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

부산이 새로운 꿈에 도전한다. 바로 엑스포다. 시민서명운동을 거쳐 2019년 국가사업으로 확정됐다. 필요성을 공유하고, 냉소를 극복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엑스포가 부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키는 아니겠지만, 활로를 열 핵심키임에는 틀림없다. 홍보대사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빛냈던 이정재이고, 주무대가 재개발하는 북항이며, 필수 인프라가 가덕신공항인 것은 상징적이다. 시민들의 꿈이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이 다시 꿈을 잉태하는 셈이다.

언론도 그 꿈에 함께한다. 〈부산일보〉는 지난달부터 시리즈를 시작했다. 20개 분야를 선별해 엑스포가 열리면 무엇이 좋은지 짚고, 유치를 기원하는 30명의 인터뷰를 릴레이로 싣는다. 엑스포가 열릴 ‘2030년’에 착안한 것이다. 인터뷰 두 번째 주자였던 조수미는 엑스포 유치 도전을 ‘뷰티풀 챌린지’(beautiful challenge)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대로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부산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서 신화를 창조한 경험들이 있고, 그런 DNA가 시민의식에 면면히 흐른다.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지난 6일 4개 후보국에 대한 실사를 시작했다. 이로써 실질적인 유치전이 시작됐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 리야드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부산에는 세계를 감동시킬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고, 대한민국에는 K컬처, 기술, 맨파워 등 공유할 거리가 많다. 다음 달 2일 한국을 찾는 엑스포실사단에게 이런 콘텐츠가 유감없이 전달되길 바란다.

끝으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부산에는 물가를 뜻하는 ‘포’(浦)가 들어간 곳이 많다. 호포, 구포, 덕포, 다대포, 부산포, 미포, 청사포, 구덕포…. 강과 바다를 품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어떨까. 엑스포(浦). 배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가덕도를 통해 드나들며, 세계인들이 농수산물 대신 자기 나라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와 교류하는 곳 말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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