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위기의 한국 외교, 올인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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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미·중 간 패권 경쟁 갈수록 심화
국제사회 신냉전·보호주의 고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

동맹은 주고받는 관계가 더욱 필요
미국 쪽으로 무게 중심 옮기되
한국 기업에 외교적 선물도 요구해야

한국 외교가 위태롭다. 아슬아슬하다. 안정이 아니라 불안, 질서가 아니라 혼란의 시대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국제사회의 거대한 변환에 있다. 국제사회가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면서 한국의 외교 정책도 불확실성과 위기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작금의 국제 사회는 신냉전과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목도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국제사회는 탈냉전에서 신냉전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무역 질서에서 중상주의와 보호주의 무역 질서로 거대한 전환을 경험하는 것이다.

신냉전은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산물이다. 국제정치학에서 패권안정이론과 세력전이이론, 장주기이론 등은 현존 패권국에 대한 신흥 패권국의 도전이 거세지는 시기가 바로 패권 전쟁이 가시화되고 국제사회가 가장 불안정한 시기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미·중 간 무력 충돌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국제체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적 차원의 대중국 봉쇄 정책이 국제사회의 주요 관계를 거의 규정하는 체제다. 미국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의 중국 봉쇄와 고립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구조적 영향력을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안보 분야에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고 고립하기 위해 기존의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에 더해 새롭게 한·미·일 군사협력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다. 미국 시각에서 보면 한·일 간 역사적이고 영토적인 분쟁이 한·미·일 군사협력을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식은 미국의 이러한 인식과 기대를 반영한 정책이다.

경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 패권국으로의 성장을 차단하기 위해 열심이다.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질서가 중국의 배만 채워 주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국의 차세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보호주의와 중상주의에 나선 지 오래다. 이를 위해 차세대 성장 산업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고 미국이 이 분야에서 다시 국제적 표준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한국의 외교는 어찌해야 하는가?

첫째, 한국은 더 이상 어정쩡한 중립이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 시기는 지났다. 현재 미국은 변함없는 글로벌 군사 패권국이며, 경제적으로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고 다시 경제 패권국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런 시기에 아직 패권국이 아닌 중국을 미국보다 우선시하는 외교는 한국의 선택이 될 수 없다. 미국 중심 외교가 지금으로서는 한국 외교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에 올인하는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는 상대가 있고,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미국에 올인하는 외교는 우리가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내어 주는 관계를 만들기 쉽다. 한국은 미국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중 사이에서 미국 쪽으로 무게 중심을 조금 옮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외교적 균형추가 미국 쪽으로 조금 이동한다면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외교적 선물을 한국에 지불해야 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지원법에서 한국기업을 차별하는 것은 이런 인식에서 바라보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올인은 이렇듯 국가 간에 주고받는 관계를 저해한다. 받는 것 없이 다 내어 주는데, 알아서 잘 챙겨 주는 나라는 없다. 동맹도 마찬가지다.

둘째, 대외 의존 경제와 수출 주도 경제를 지닌 한국은 국제경제질서가 자유무역에 정초해 있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은 WTO 중심의 자유무역질서를 옹호하고 확대·강화해 나가야 하며, 지역주의 블록도 보호주의와 패권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무역 자유화의 수단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칩4 등과 같이 미국의 대중국 경제봉쇄가 더욱 확대되어 간다면 한국은 그 방향으로 함께하는 큰 기조를 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더라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지속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은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중국 없는 한국 경제는 미국과의 경제 동맹만으로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 또 미국은 한국이 칩4와 같은 대중 경제 봉쇄에 참여하는 대신 그 반대급부를 반드시 한국에 지불해야 한다. 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없다. 동맹도 이런 주고받는 관계를 잘하는 동맹이 더 견고하고 더 오래간다.

나라의 운명이 불확실한 글로벌 대전환 시기에는 외교관계에서 위험 분산과 주고받는 자세를 견지하는 데 더 충실해야 한다. 올인은 안 된다. 너무 단순하고 위험하다. 올인은 전시에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에도 외교는 살아 있고 적과도 대화를 하는 법이다. 중국과 완전히 척지고 미국에 올인하는 것은 한국의 생존 전략이 아니다. 올인이 아니라 약간의 무게추 이동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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