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빵’ 감독 그만!… 안정적인 ‘전임 감독제’ 시급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우물 안' 한국 야구] 하. 부실한 국가대표팀 운영

2023 WBC 대표팀 사령탑
KT 이강철 감독 임시로 겸임
전력 분석·전략 마련 어려워
일본은 2013년부터 전임제
‘사무라이 재팬’ 브랜드화 통해
운영 자금 확보·국제대회 유치
국제 경쟁력·국제 경험 쌓아

한국 야구 대표팀에도 전임 감독제 도입과 브랜드화 작업이 필요하다. KT 위즈 감독을 맡으면서 WBC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강철 감독이 14일 오후 귀국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 대표팀에도 전임 감독제 도입과 브랜드화 작업이 필요하다. KT 위즈 감독을 맡으면서 WBC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강철 감독이 14일 오후 귀국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 야구의 현실을 냉정하게 확인한 대회였다. 세계 야구 무대에서 한국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고, 야구 선진국들은 뛰고 있었다. 야구 중진국에는 쫓기는 입장이었다. ‘2008년 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영광을 누린 팀이라고 말하기에는 실력도, 전략도 부족했다.

한국 야구의 제자리걸음에는 부실한 국가대표팀 운영이 큰 원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상시 관리·운영되는 축구와 달리 야구 대표팀은 임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야구 대표팀은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KT 위즈 이강철 감독이 지휘하고 있다. 이강철 감독은 이번 WBC 대표팀 감독 역할을 하기 위해 KT 스프링캠프 도중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는 코치진도 마찬가지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올림픽·아시안게임·WBC 등 국제대회가 있을 때만 임시로 꾸려지다 보니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한 분석과 전략 마련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야구 대표팀과 상황이 다르다. 대한축구협회(KFA)는 파울루 벤투 전 감독(재임 기간 4년 4개월)에 이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게 2026년 월드컵까지 지휘봉을 맡기며 전임 감독 체제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야구 대표팀 역시 전임 감독제를 운영하며 체질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은 2013 WBC가 끝난 뒤 전임 감독제를 도입해 10년 넘게 운영 중이다. 일본 야구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도 국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번 WBC에서 일본 야구 대표팀을 4전 전승, B조 1위로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61) 감독은 일본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구리야마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 감독(2012년~2021년)을 지낸 뒤 지난해 11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위에서부터 일본 도쿄돔 구장 1층에서 일본 대표팀 브랜드 ‘사무라이 재팬’의 기념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일본 팬들과 도쿄돔 2층 스크린에 상영되는 ‘사무라이 재팬’ 응원 광고물. 김한수 기자 위에서부터 일본 도쿄돔 구장 1층에서 일본 대표팀 브랜드 ‘사무라이 재팬’의 기념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일본 팬들과 도쿄돔 2층 스크린에 상영되는 ‘사무라이 재팬’ 응원 광고물. 김한수 기자

일본 야구의 중추인 일본야구기구(NPB)는 국가 대표팀의 브랜드화도 진행했다. 바로 ‘사무라이 재팬’이다. 사무라이 재팬은 2011년부터 일본 야구 프로·아마추어 대표팀의 브랜드로 사용되고 있다. NPB는 사무라이 재팬의 브랜딩·마케팅 작업을 통해 국제대회 참가 유치와 참가 비용 확보, 우수 선수 육성 등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사무라이 재팬은 12년이 지난 지금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일본 야구팬들에게는 일본 야구를 더욱 사랑하게 하는 매개체로서 자리매김했다. 실제 2023 WBC 기간 동안 도쿄돔 주변에 설치된 WBC 공식 기념품 매장에는 사무라이 재팬이 제작한 유니폼과 티셔츠·모자 등 일본 대표팀 기념품을 사려는 줄이 수백m 늘어섰다. 티셔츠·머플러 등 인기 제품은 매장 개장 1시간여 만에 동이 나기도 했다. 사무라이 재팬은 일본 대형 운송·금융·엔터테인먼트·스포츠용품 업체 등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자금 마련 수단까지 구축했다.

사무라이 재팬은 이를 바탕으로 본래 창설 목적인 야구 대표팀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사무라이 재팬 시리즈’에 다른 나라 대표팀을 초청해 실력을 점검하고, 대표팀 선수들은 다양한 국제 대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국제 경기 경험을 쌓는다.

한국 야구 대표팀 운영 체제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2023 WBC에서 대참사를 겪은 만큼 운영 변화를 위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또 한번 틀에 박힌 자성과 알맹이 없는 결의로 끝내서는 안 된다. 한국 야구의 현실에 맞는 시스템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KBO리그 10개 구단의 출연금에 대부분 의존하는 대표팀 운영 자금 경로도 마케팅 강화·스폰서십 체결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일본·호주·쿠바 등과의 지속적인 경기 교류전도 이뤄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한국 축구 대표팀이나 일본 야구 대표팀을 본보기로 삼아 장기적 구상에 바탕을 둔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2023 WBC의 수모를 단지 부끄러운 과거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민낯을 드러낸 김에 이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늦었지만 시작이 반이다.

도쿄(일본)=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