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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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부산 떠나고 싶은 젊은이 점점 늘어
일자리 찾기 힘든 현실 인내심 한계
좋은 도시 못 만든 기성세대 자괴감

대학에서 퇴임이 가까워졌을 때 먼저 정년을 맞았던 선배들이 농담 삼아 가장 먼저 해 준 조언은 ‘어르신 교통카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많이 다녀 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을 많이 했으니 좀 내려놓으라는 충고쯤으로 받아들였는데, 무료로 전철을 이용하는 혜택을 직접 누리게 되면서 그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전에 비해 얽매이는 일이 적어진 탓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이 많아졌고, 또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움에서 더 자주 전철을 이용하게 되다 보니 나름의 재미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달 이용하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교통카드를 넣을 때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맞아 주는 지하철의 뜻하지 않은 환대에 곧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모든 승객들에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아마 나 혼자였으면 크게 당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시간대에는 앞에서도 그리고 옆에서도 계속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들려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눈을 감아도 옆에 카드를 넣는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를.

공교롭게도 많은 생각이 교차하던 시기에 도시철도 무임승차 국비 지원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었다. 대구시는 무임승차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였고, 서울시는 정부가 국고로 손실분을 보전해 주지 않는다면 요금 인상이나 연령 상향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부산시도 무임승차 손실분에 대해 국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오랫동안 굳어져 온 정책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존속 의미는 없을 수 없기에 정책의 변화에는 폭넓은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노인들의 무임승차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보다 정말 큰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저울질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논쟁이 일어나던 시점에 부산에서는 올 들어 1월에만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 3개 시도로 799명의 20·30대 젊은 층의 순유출이 있었다. 작년 1월보다도 더 늘어난 규모이고, 순유출 규모 자체는 서울이 컸지만, 증가세는 인천과 경기도가 훨씬 가팔랐다는 해설이 있었다. 앞으로는 경기와 인천으로 유출되는 청년들이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시사이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근년의 설문조사 결과가 갑자기 생각났다. 매 학기 수업 시간을 이용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표본의 크기나 대상이 일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응답 결과는 놀라운 일관성을 보여 주었다. 오랫동안 동일한 설문내용으로 조사를 하기 때문에 이것은 학생들의 인식 변화를 볼 수 있는 주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시사적인 중요성 때문에 몇 년 전에 새롭게 넣었던 ‘졸업 후 어디에 취업하고 싶은가’ 하는 설문에 대한 응답 결과가 떠올랐다. 짧은 기간이기에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변화는 감지되었다. 물론 항상 부산에 남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높지만 미세하게 수도권으로 가고 싶다는 응답 비율이 높아지고 있었다. 결국 부산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나타나는 응답이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 부산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은 다른 여러 조사에서도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기대를 충족해 주지 못하고 기다리던 학생들의 인내심이 조금씩 고갈되어 가면서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부산을 떠날 결심’을 하는 것을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하는 마음은 무거웠다.

오늘날의 부산을 만든 나이 든 세대도 물론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고 모두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면서 살 수 있는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그 실패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결국 다시 우리 노인들에게도 돌아온다. 젊은이들이 떠나면 나이 든 세대도 결국 부산을 떠나게 된다.

지난 몇 년간 가까이 지내던 친구 둘이 자녀들을 따라 경기도로 이사를 갔다. 올 상반기에는 또 두 명의 친구가 손주들을 보아 주기 위해 몇 달간 부산을 떠나 경기도에서 지내다 오겠다고 얼마 전 연락이 왔다. 행정적인 관점으로 보면 주민등록은 부산에 있지만 잠시나마 경기도의 생활인구로 편입되는 셈이다. 일자리가 있는 부산을 만들지 못한 자괴감 때문인지, 요즘에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듣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에 대해 마음속으로 ‘미안합니다’라고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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