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너구리 숙주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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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20일부터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풀려 일상 속 노마스크가 현실이 됐다. 병원 등 일부 특수 시설에 착용 의무가 남아 있고 아직은 노마스크가 더 어색한 게 사회 전반의 분위기지만 길고 길었던 코로나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올해에는 코로나 비상사태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코로나 엔데믹에 접어들지만 전 세계를 팬데믹 공포로 몰아넣은 이 바이러스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더 뜨겁다. 대체로 논쟁은 ‘자연 발생설’과 ‘실험실 기원설’이라는 두 범주에서 진행됐다. 발생 초기 중국 우한 실험실에서 유출됐다는 이야기가 미국을 중심으로 퍼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염기서열이 자연 상태와 다르고 인체 세포와 쉽게 결합하도록 돼 있다는 과학적 설명까지 뒤따랐다. 그러나 WHO는 초기 현지 조사에서 실험실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음모론 정도로 일축했다. 대신 박쥐에서 매개 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전염됐을 것이라는 자연 발생설이 과학계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최근 미 연방수사국(FBI)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이 “바이러스가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연구소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언급해 실험실 유출설에 다시 불을 당겼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실험실 유출을 트위터에 코멘트하며 논란에 가세했다. 미국 하원은 지난 10일 중국 우한 연구소와 코로나19의 잠재적 연결성 관련 정보의 기밀 해제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중국이 미 정보기관은 ‘조작과 거짓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며 반박하고 나선 것은 예견된 일이다. 머스크에 대해서도 “밥솥 깨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중 갈등이 바이러스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WHO 과학자문그룹회의에서 국제 연구팀이 코로나 대유행이 중국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 불법 판매된 너구리에서 시작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놔 주목받았다. 중국이 2020년 1월부터 3월까지 이 시장에서 채취한 유전자 데이터를 지난 1월 공개했는데 재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양성의 너구리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너구리를 숙주로 인간에 옮겨졌다는 설명이다. WHO는 중국이 알면서 은폐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코로나 기원에 대한 과학적 규명은 또 닥칠 팬데믹 대응을 위해서도 중요한데 패권 경쟁에 막힌 국제적 공조가 아쉽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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