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수도권만 살 수 있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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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가덕신공항 2029년 개항 발표
중앙지, 안전 빌미로 일제히 비난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규제 풀고 속도전 강조 이중적 면모
저출생 근본 이유는 서울 쏠린 탓
수도권 초집중 정책 쏟아져 답답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가덕신공항이 들어설 국수봉 일대를 바라본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가덕신공항이 들어설 국수봉 일대를 바라본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주에는 빅이슈가 많았다. 12년 만의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최근 WBC 야구 한·일전의 결과가 외교에서도 이어진 느낌이다. 그 직전인 14일에는 가덕신공항의 2029년 12월 개항이 확정됐다. 부산시민이 염원해 온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이전 가덕신공항 개항이 마침내 가능해진 것이다. 15일에는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전국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계획이 나왔다. 이 계획에 유독 부산만 빠져 의아했다. 부산시가 땅이 없어서 신청을 안 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부산은 가덕신공항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으니 좀 빠져 있으라는 의미로 읽혀 찜찜했다.


중앙지가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이율배반적이었다. 중앙지란 서울에 본사가 있는 신문사가 전국에 보급하는 신문이란 뜻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들에게 지방은 안중에도 없었다. 조선일보는 ‘돌연 공기 6년 단축한다는 가덕도 공항, 믿거나 말거나인가’라는 사설 제목으로 “내년 총선 부산 경남 표를 얻으려고 이런 믿거나 말거나 발표를 한다”라고 몰아갔다.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가덕도 신공항 工期 절반으로 줄이겠다… 이래도 되나’였다. 한겨레신문도 ‘가덕도 신공항 5년 단축, 안전 경시 무리수 아닌가’라며 동조했다. 서울신문은 “도로 물려도 시원찮을 국책사업에 안전성 시비까지 얹어져서는 말이 안 된다. 총선이 다가오니 부산·경남 표밭을 의식한 포퓰리즘이 또 도지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라고 비난을 쏟아부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추앙했다’. 조선일보는 ‘수도권에 세계 최대 삼성 반도체 결단, 한국에 마지막 기회’라는 사설 제목으로 찬양했다. 다른 중앙지도 비슷한 태도로 속도전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정부는 반도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제때 공급할 수 있도록 수도권 대학 정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중앙일보는 “지방 분권에 역행하고 수도권 집중을 강화한다는 비판 역시 극복해야 한다. 충분한 전문인력 양성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지율이 하락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라며 돌격대 역할을 자임했다. 한국일보만이 “추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균형발전 저해와 특혜 논란 등을 보완할 실질적인 대책에도 신경을 쏟길 바란다”며 비교적 균형 잡힌 자세를 보였다.

2002년 중국 민항기의 경남 김해시 돗대산 충돌 사고로 출발한 가덕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논란이 일단락되는 데 20여 년이 걸렸다. 공법을 바꾸고 공기를 단축해 엑스포 전에 안전한 국제공항을 개항하겠다는 계획이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으려면 엄청난 부지가 필요해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벌써부터 수도권 대학 정원을 풀라고 성화다. 속도전은 왜 수도권에만 유효한가.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는다’는 말이 씨가 되면서, 벚꽃을 보는 심사가 편치 않다. 지방을 쥐어짜서 서울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일 게다.

서울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사실이 있다. 전국의 출산율이 낮아서 걱정이지만 특히 서울은 지난해 17개 시도 중에서 가장 적은 0.59명이란 충격적인 출산율 수치가 나왔다. 두 명이 0.5명을 낳으니 서울은 이미 멸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인구학자 서울대 조영태 교수가 얼마 전 아침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이렇게 떨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너무나 엄청난 집중 때문이다. 경쟁이 굉장히 심해 모든 인생이 다 경쟁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새롭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진행자가 “저출산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핵심 원인을 수도권 집중에서 보는 이런 시각은 지금 처음 듣는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라고 감탄해서 오히려 놀랐다. 서울이라는 고지에 서면 지방은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은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린다.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우리나라 연간 산업용 전력 판매량의 무려 20%가 소비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 자급률이 서울은 8.9%, 경기는 60.1%에 불과하다.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 어디서 끌어오느라 얼마나 비용이 들지 생각은 한 것일까. 원전을 떠안은 부산의 전력자급률은 200%가 넘는다. 항만, 공항, 대학에 전력까지 풍부한 부산 주변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은 왜 고려의 대상조차 안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아무리 저출생 대책을 세우면 뭐 하나 싶다. 그 몇 배, 몇십 배의 수도권 초집중 정책이 쏟아지니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이래저래 맘 편하게 벚꽃을 즐기기조차 힘든 봄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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