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붙잡는 도도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전시를 듣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도도새 작가’ 김선우 개인전
4월 9일까지 해운대 가나부산
캔버스 밖으로 나간 도도새
점토 이용한 입체 작업 선봬
“날지 못하는 바보 새가 아닌
날아오르는 가능성 품은 존재”

김선우 'On the milky way'(2023). 가나부산 제공 김선우 'On the milky way'(2023). 가나부산 제공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도새 작가’ 김선우는 매일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김 작가는 “루틴은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좌절이나 실패가 있어도 다시 일어나서 작업실에 갈 수 있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2021년 김 작가가 조르주 쇠라의 작품을 오마주한 ‘모리셔스섬의 일요일’이 경매에서 1억 1500만 원에 낙찰됐다. ‘도도새 열풍’의 정점을 찍은 이 경매로 김 작가는 미술계 화제의 인물이 됐다. 때문에 김 작가를 ‘명화 패러디’ 작업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김 작가는 “명화 패러디는 메인 작업이 아닌,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김선우 'Wishers and dreamers'(2022). 가나부산 제공 김선우 'Wishers and dreamers'(2022). 가나부산 제공

1988년생 김선우는 동국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도도새 이전에 그는 새 머리를 한 인간을 그렸다. “사람들이 획일화된 모습이 날개를 잃어버린 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인이 억압당하고 있구나, 자유 의지가 있지만 그걸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구나 싶었죠.” 우연히 멸종된 동물에 대한 글을 읽던 김 작가는 도도새를 만나게 됐다.

남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동쪽의 모리셔스섬에 살았던 도도새는 천적이 없는 환경에 안주했다.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버린 도도새는 섬에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멸종됐다. 포르투갈어로 ‘도도’는 ‘바보’를 뜻한다. 김 작가는 2015년 강원도 양양 일현미술관이 진행하는 ‘일현 트래블 그랜트’에 선정돼 모리셔스로 한 달간 여행을 가게 됐다. ‘도도새를 찾으러 떠난 여행’은 도도새 작업의 시작점이 됐다.

김선우 'NEVERMIND'(2023). 가나부산 제공 김선우 'NEVERMIND'(2023). 가나부산 제공

“존재하지 않는 새를 찾아 섬을 돌아다니며 300장 이상 드로잉을 해 왔어요. 없는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죠.” 김 작가는 도도새를 통해 현실과의 타협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꿈을 망각하는 현대인에게 말을 걸었다. ‘날지 못하는 바보 새가 아닌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임을 떠올려 보자고.

그의 작품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사교육과 경쟁 속에 자란 세대를 중심으로 ‘이게 맞나’ 생각을 한다고 하시더군요.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도도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셨죠.”

김선우 개인전 ‘별을 붙잡는 일: 오전 다섯 시부터 오후 다섯 시’는 도도새를 찾아 떠난 김 작가의 여행 과정을 풀어내 보여준다. 전시는 4월 9일까지 열린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가나부산(그랜드 조선 부산 4층) 전시장 입구에 천체관측기구 아스트롤라베 모형을 비롯해 작가가 모리셔스에서 구해 온 도도새가 그려진 성냥갑과 현지에서 그린 드로잉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김 작가는 “사람들이 꿈을 찾기 위한 자신만의 아스트롤라베(길 찾기 도구)를 고민해 보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선우 ‘Hide and seek’(2022). 가나부산 제공 김선우 ‘Hide and seek’(2022). 가나부산 제공
김선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디오라마 시리즈를 새로 선보인다. 회화와 입체를 병행한 작품으로 소장자에게 창작의 기쁨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오금아 기자 김선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디오라마 시리즈를 새로 선보인다. 회화와 입체를 병행한 작품으로 소장자에게 창작의 기쁨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오금아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캔버스 밖으로 나온 도도새를 만날 수 있다. “언제까지 도도새를 그릴 거냐는 질문을 가끔 받거든요. ‘그럼 도도새를 그리지 말아 볼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화면에는 정글만 그리고 도도새는 따로 빼냈어요.” 캔버스 위에 매달린 도도새 오브제는 석분점토로 만든 것이다.

김 작가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그림 속 구성요소를 화면 밖으로 끄집어낸 ‘디오라마’ 시리즈도 선보인다. “소장자에게 창작의 기쁨을 나눠주고 싶어서 한 작업인데 개인적으로 해방감을 느꼈어요.” 디오라마 시리즈 뒤에 설치된 조경 모형도 김 작가가 손수 만든 것이다.

김선우 작가에게는 책 읽기도 작가로서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오금아 기자 김선우 작가에게는 책 읽기도 작가로서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오금아 기자

전시장 한쪽에 책이 쌓여 있고 그 위에 도도새가 누워 있다. 제일 위쪽에 놓여 있는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다. “독서는 그림과 함께 제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동기를 주는 수단이죠. 오디오북을 들으며 작업하는데 역사 책을 많이 들어요. 역사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니까요.”

김선우 'The Hitchhiker of the galaxy'(2023), 가나부산 제공 김선우 'The Hitchhiker of the galaxy'(2023), 가나부산 제공
도도새를 통해 꿈을 포기한 현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김선우 작가가 작품 'On the milky way' 속 도도새를 바라보고 있다. 오금아 기자 도도새를 통해 꿈을 포기한 현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김선우 작가가 작품 'On the milky way' 속 도도새를 바라보고 있다. 오금아 기자

김 작가가 보여주는 도도새의 모습은 정글을 탐험하고, 별똥별을 바라보고, 은하수를 유영하는 등 다양하다. 전시 작품 중 ‘온더밀키웨이’는 김 작가의 기존 작업과 색감이 달라 보인다. 노랗게 반짝이는 물속에 앉은 도도새 옆에는 나침반이 놓여 있다.

“전시 전 전시장을 보러 왔을 때 아침에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윤슬을 봤어요. 탐험의 시작 또는 끝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목적지에 도착해서 감격에 겨운 모습이든 도전에 실패한 모습이든 그림에 대한 해석은 보는 이의 몫이다. “제가 하는 이야기에 이어서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